울산지법 전경.(사진=전용모 기자)
이미지 확대보기피고인은 한 모텔 309호에서 피해자가 술에 취해 잠들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인 틈을 타 간음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고인 및 변호인은 "사건 당시 피해자는 항거불능의 상태가 아니었고, 피고인은 피해자의 묵시적 동의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성관계에 나아간 것이므로, 준강간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울산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박주영 부장판사, 판사 김도영, 정의철)는 2020년 11월 27일 준강간 혐의로 기소(2020고합250)된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가 이 사건 당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는 점, 피고인이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인식하고 이를 이용해 간음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는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이 적어도 4시간 이상의 휴식을 취한 이후 오전 5시에서 오전 8시사이에 성관계가 이뤄졌다고 봤다. 피해자가 모텔에 들어갈 당시 평소보다 과다 섭취한 알코올의 영향으로 인해 사리분별이나 의사결정능력이 저하되었던 상태였고, 이후 성관계 당시에도 위와 같은 상태가 어느 정도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이긴 하나, 이 사건 당시 피해자의 상태가 준강간죄죄에서 말하는 항거불능의 상태에까지 이르렀다고는 쉽사리 단정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판단했다.
성관계를 인식한 시점에서 피해자가 거부나 불쾌감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할 것인데, 오히려 피해자가 성관계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정황이있고, 성관계가 끝난 이후에도 아침 식사까지 함께 한 다음 자연스럽게 헤어진 정황도 다소 이례적이라고 했다.
피해자의 친오빠에게 피고인을 소개하기 위해 만나기로 하는 일정에 대한 이야기, 지인의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 피해자의 몸 상태를 걱정하거나 출퇴근 무렵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등 매우 가깝고 친밀한 내용의 문자를 주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와 연인관계나 적어도 그에 준하는 매우 친밀한 관계로 지내왔던 것으로 보이고, 이전에도 두 차례 술자리를 한 후 자연스럽게 모텔에 가 성관계를 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사건 당시에도 이전처럼 술자리를 한 후 피해자가 피고인과 모텔에 동행하면서 성관계에 대한 교섭이 있었거나, 모텔에 가는 것 자체를 성관계에 대한 묵시적 동의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봤다. 피고인이 당시 피해자와의 관계가 ‘연인’라고 주장하는 바와 부합하다.
이후 계속되는 피해자의 문자메시지 내용을 보면, 피해자는 사실혼 관계에 있고, 현재 울산구치소에 수감 중인 남친(사실혼배우자)과 전화 면회를 하면서 사건 당일 있었던 피고인과의 일을 이야기하게 된 것으로 보이고, 그 후로 피고인에게 이 사건에 대해 따지기 시작하고, 고소와 합의금 문제를 언급하면서 피고인에 대한 처벌의사를 계속 표시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고소 역시 피해자 본인이 아닌 남친이 2020년 3월 22일 울산구치소에서 작성, 같은 달 24일 울산울주경찰서에 접수된 고소장을 통해 이뤄졌다.
◇형법 제29조에서 말하는 준강간죄는 사람의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서, 이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구성요건 요소로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주관적 구성요건요소로서 피고인에게 위와 같은 피해자의 상태에 대한 인식 및 이를 이용하여 간음한다는 고의도 인정되어야 한다. 여기서 항거불능의 상태라 함은 형법 제297조, 제297조의2, 제298조와의 균형상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 때문에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의미한다(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9도2001 판결 등 참조).
◇형사재판에서 공소 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대법원 2001. 8. 21. 선고 2001도2823 판결, 대법원 2008. 7. 24. 선고 2008도4467 판결 등 참조)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