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후보자는 1962년 경남 창녕군에서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후 일찍이 대구의 변두리로 이사해 자랐다. 그의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신간회 대구지회, 대구청년동맹에서 활동하고, 비밀항일단체인 ‘ㄱ당’을 조직해 독립자금 모집을 하다 체포되어 3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러한 공훈을 인정받아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는 영광도 있었지만 독립운동을 하느라 집안을 돌보지 못한 영향으로, 아버지는 평생을 염색공장 근로자로 일했고, 어머니 또한 하루도 빠짐없이 경제활동을 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집안 형편상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모교의 장학 혜택 덕분에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고, 다행히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 군법무관을 거쳐 1990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판사로 임관한 이래 지난 30년간 법관으로 재직하며 다양한 재판업무를 담당해 왔다.
노 후보자는 "이 자리를 빌려 일생 동안 고단한 세월을 견디어내시면서 묵묵히 지켜봐주시고 성원하여 주신 부모님, 진정한 법관의 자세와 모습을 가르쳐주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던 선후배 법관님들, 재판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준 법원 직원 여러분, 가난한 유학생에게 학업을 계속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우리 사회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그는 법관으로 임관된 이래 겸손하고 열린 자세로 당사자의 주장을 경청하고, 구체적 사안에 적합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과정에서 동료 법관 및 직원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기쁨을 경험했다고 했다. 특히 국제거래와 지식재산권 전담재판부에 근무할 당시 외국법원의 파산절차상 결정의 효력이 국내에서 인정되기 위한 요건, 지식재산권 행사의 한계와 공정거래법의 적용과의 관계에 관한 법리를 처음으로 제시하는 등 관련 법리와 실무를 발전시키는 데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고.
노 후보자는 "법관은 매일 다양한 사건을 마주하지만, 저는 법관이 다루는 것은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그 속에는 당사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들의 미래가 오롯이 담겨 있기에 이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사건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당사자를 정중하고 진솔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또 나의 판단이 법과 양심에 맞는지, 다른 의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했는지,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내가 추구하는 정의를 지켜낼 용기가 있는지에 대해 자문해보고, 이를 지켜내겠다고 다짐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과 다짐을 온전히 실천하기에는 저의 능력이 부족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또 "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지배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소수자 보호가 전제되어야 하고, 사법부의 존재가치는 다수에 의해 소수자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데 있다는 신념으로 재판에 임했다. 유족연금을 받던 배우자가 재혼할 경우 유족연금수급권 전부를 박탈하는 공무원연금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고, 취객을 상대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경찰관과 화재현장에서 근무하다 희귀질환으로 사망한 소방관에 대하여 공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아니한 1심판결을 취소하고 이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이러한 신념의 실천이었다"고 했다.
법원장 시절에는 이주민 출신 등 다문화가정 구성원을 시민사법위원으로 위촉해 그들의 의견을 사법행정에 반영하는 등 국민들의 사법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여러 각도로 모색했다. 그 과정에서 다문화 구성원에게 우리의 법률문화를 이해시키는 것 못지않게 우리가 먼저 그들의 문화를 편견 없이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그들이 온전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용과 포용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노 후보자는 "사법개혁을 위한 법원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법원을 향한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고, 재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신뢰를 존립기반으로 하는 법원으로서는 매우 안타깝고 엄중한 상황이다. 저 또한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태악 대법관 후보자는 "제가 만약 오늘의 청문과정을 거쳐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법관에 임명된다면, 사건기록 속에 녹아있는 당사자의 아픔과 고민, 분쟁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다양한 이해관계가 공존할 수 있는 규범적 가치기준을 정립하는 한편, 개별 사건에 숨어있는 사회적·법률적 쟁점을 발굴해내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해 보였다.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