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조사의 바탕이 된 숙의민주주의 이념의 핵심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충분한 기간 동안 여러 관점의 자료를 검토하면서 숙의를 하면 그 집합적 판단이 공동체에 대해 이성적일 수 있다는 것일 터이다. 실제로 해외에서 시행된 사례에서도 사람들은 처음 직관적으로 정했던 입장을 숙의를 통해 바꾸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한국처럼 신뢰가 낮은 사회의 경우 그 이념의 진실 여부와 별개로 그 사실을 믿을 수 있는지가 의심스러웠다는 점이다. 시민들이 공론하위에 참여한 이들을 자신들의 대표자로 보지 않는다면, 바로 본인들이 숙의했을 경우에도 그와 같은 판단으로 나아갈 거란 점을 믿지 못한다면 숙의민주주의 모델의 의사결정의 권위는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앞으로 공론화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많은 사회적 갈등 상황에 대한 대안적 모델로 등장하게 될 가능성을 점쳐볼 수밖에 없다. 특히 불과 몇 달 전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있었던 최저임금 이슈에 대해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사안에서 겪었듯 공론화위가 반드시 결정기구여야 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대의민주주의가 튼튼하지 않은 한국의 실정에서 공론화위가 결정기구가 될 경우 정치권이 시민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책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공론화위의 의결이 참조자료로 주어지되 최종적인 결단은 정부 기구에서 내린 것으로 해야 결과에 따른 정치적 책임이 명확해질 수 있다. 이는 국민참여재판에서도 배심원의 견해를 재판부가 참조하여 판결을 선고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러면서 양쪽의 판단을 되도록 일치시키는 방향을 추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최저임금 문제에 대해서도 현행 결정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의 결론이 나기 한두 달 전 참고자료로 사용할 만한 공론조사위원회의 활동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재의 최저임금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소속 기구로 1987년에 발족되었고, 공익위원과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각 9명씩 27명으로 구성된다.
공론화위가 구성된다면 한국 사회 전체 지형도의 축소판을 짜게 된다. 이번처럼 500여인 시민참여단이 구성된다면 연령·성별·지역별 비율을 짜서 구성하게 된다. 최저임금이란 이슈의 특성상 소득수준·소득형태를 고려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으로 대의되지 않는 하청업체 노동자나 비정규직 및 알바 등을 우리 사회에 실제로 존재하는 비율대로 구성할 수 있다. 또한 최저임금 이슈에 대단히 민감하지만 언제나 소외받는다고 평가받는 영세자영업자도 실제 인구의 비율인 20% 이상으로 반영할 수 있다. 이들의 논의 결과는 분명 현존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결론에도 압력으로 작용될 것이다.
매년 이렇게 하기가 부담스럽다면 ‘최저임금 1만원’이란 목표에 대한 일회적 조사를 시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번 원전 조사처럼 극단되는 두 가지 입장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복잡다단한 이런 종류의 사안에서 숙의는 더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숙의의 총합이 어떠한 결론을 내릴지도 속단하기 어렵다. 또한 결과가 어느 쪽으로 가든 사회 구성원의 축소판인 시민들의 숙의가 담겨 있다고 인정하기 쉽다.
결국 이번 공론위 조사 발표는 원자력발전소 문제나 에너지정책에 대한 접근을 넘어서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의 대안적 사례를 제시한 셈이다. 이 교훈을 우리가 음미할 수 있다면 그 모델을 확장해보는 것도 고민해봄직하다. 물론 이번 공론조사 과정에서 발생하거나 보고서 검토하며 지적되는 문제들에 대한 보완책도 함께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숙의하는 시민’을 신뢰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더 많이 물어볼 필요가 있다.
*선을 넘는 행위(Over the line)는 스포츠 경기에선 반칙입니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기존의 구획, 영역, 선을 넘어서서 생각해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치/시사/언론/문화 등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선을 넘어서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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