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한의사도 뇌파계로 파킨슨병ㆍ치매 진단…면허정지 위법”

기사입력:2016-08-28 12:24:51
[로이슈 신종철 기자]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인 ‘뇌파계’를 활용해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적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의사도 의료기기인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할 수 있다는 이번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 대한한의사협회는 “보건복지부는 국민의 진료 선택권을 보장하고 편의성을 높이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규제를 하루 빨리 풀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에 따르면 한의사 A씨는 2010년 9월부터 12월까지 자신이 운영하던 서울 서초구의 한의원에서 ‘뇌파계’를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에 사용했다.

그러던 중 2010년 11월 한 언론사가 ‘급증하는 40~50대 파킨슨병 환자…복진ㆍ뇌파검사로 진단…한약으로 치료’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는데, 이 기사에 A씨가 환자에게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 여부를 확인하고 있는 사진이 포함돼 있었다.

이에 보건소장이 2011년 1월 한의사 A씨에게 업무정지 3개월(2011년 2월 24일부터 5월 23일까지) 및 경고처분을 했다. 또한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를 이유로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기준에 따라 2012년 4월 27일 A씨에게 3개월(2012년 8월 15일부터 11월 14일까지)의 한의사면허 자격정지처분 및 경고처분을 했다.

이 뇌파계는 2009년 1월 12일, 의료기기의 등급분류 및 지정에 관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위해도 2등급(잠재적 위험성이 낮은 의료기기)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다.

이에 A씨가 자격정지처분 및 경고처분에 불복해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재결을 신청했고, 위원회는 2013년 3월 이 사건 자격정지처분을 1개월 15일(45일)로 자격정지기간을 단축하고, 경고처분 신청은 기각했다.

뇌파계는 뇌세포 활동 등에 의해 생기는 전기생리학적 변화, 즉 환자의 두피에 두 개 이상의 전극을 부착해 증폭기를 통해 뇌파를 증폭한 후 컴퓨터로 데이터 처리를 해 뇌의 전기적인 활동 신호를 기록하는 장치다.

결국, A씨는 2013년 3월 행정소송을 냈다.

A씨는 “뇌파계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로서 잠재적 위험성이 낮은 ‘위해도 2등급’에 속하는 점, ‘위해도 2등급’은 일반인도 쓸 수 있는 다기능전자혈압계나 귀적외선체온계와 같은 수준이고, 한방신경정신과를 진료하면서 짧은 기간 보조적으로 뇌파계를 사용한 것에 불과한 점, 한의학에서도 뇌파를 연구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뇌파계를 보조적으로 사용한 것이 의료법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의료법 제27조 1항에 따르면 의료인도 면허로 허용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자격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1심 서울행정법원은 2013년 10월 “뇌파계를 파킨슨병이나 치매 진단에 사용한 것은 한방의료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한의사면허정지처분을 내린 복지부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등법원 제2행정부(재판장 이균용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한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낸 한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뒤집고, “면허정지 처분을 취소하라”며 한의사의 손을 들어준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한의원에서 뇌파계를 파킨슨병, 치매 진단에 사용한 행위는 한의사로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의료기술을 계속적 발전과 함께 의료행위의 수단으로서 의료기기 사용 역시 보편화되는 추세에 있어, 의료기기의 용도나 작동원리가 한의학적 원리와 접목돼 있는 경우 등 한의학의 범위 내에 있는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서는 이를 허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봤다.

또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의료기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돼 보건위생상 위해(危害)의 우려 없이 진단이 이뤄질 수 있다면, 뇌파계의 개발 및 뇌파계를 이용한 의학적 진단 등이 현대의학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뇌파계를 사용한 것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한의학 교육과정 및 의사 국가시험의 경우에도 뇌파검사 능력 평가(측정ㆍ판독ㆍ진단 및 치료방법의 결정 능력 등 포함)에 대한 평가는 필기시험에서만 이뤄질 뿐, 특별히 임상경력이 요구되지는 않는 점 등에 비춰볼 때 한의사도 환자 상태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판단 지표 중 하나로 충분히 뇌파계를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뇌파계는 환자의 두피에 전극을 부착해 뇌의 전기적인 활동 신호를 기록하는 장치로, 그 사용 자체로 인체에 대한 위험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또한 의료기기 관련 법령에서도 일반인에게도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한방용 의료기기와 구별해 판매가 허가되고 있지도 않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뇌파계의 사용에 특별한 임상경력이 요구되지 않고, 그 위해도도 높지 않으며, 그 사용에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지식이나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점에 비춰 보면,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원고가 뇌파계를 파킨슨병 및 치매 진단 등에 사용한 행위가 한의사로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피고의 자격정지처분은 위법해 취소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한한의사협회는 지난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한의사들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중요한 법적근거가 될 것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법부의 입장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라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협회는 “자격 있는 의료인인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적법하다는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고 있는 만큼, 보건복지부는 국민의 진료 선택권을 보장하고 편의성을 높이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규제를 하루 빨리 풀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종철 기자 sky@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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