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촉용 물품, 그냥 가져가도 ‘절도’ 아니다”

판촉용 볼펜 1개 가져간 절도 혐의…1심 무죄→항소심 유죄→대법 최종 무죄 기사입력:2010-07-26 10:12:14
[법률전문 인터넷신문=로이슈] 판촉행사를 하던 화장품 가게 앞에서 판촉용 볼펜을 허락 없이 가져갔다면 ‘절도죄’에 해당할까? 이 사건은 1심에서는 무죄로 판단했으나, 항소심은 유죄로 인정해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S(52)씨는 지난해 6월 평택시 평택동에 있는 K(26,여)씨의 화장품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K씨가 화장품 판촉을 위해 탁자 위에 놓아둔 시가 2000원 상당의 화장솔 겸 볼펜 1자루를 허락 없이 집어갔다.

이때 판촉활동을 하던 K씨가 곧장 뒤따라와 볼펜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S씨는 팽개치듯 볼펜을 던지고 주먹으로 K씨의 머리와 어깨를 수차례 때려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혔다.

이에 수사기관은 S씨를 상해 및 절도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자 S씨는 “볼펜을 무료로 나눠 주는 것으로 생각해 그냥 들고 갔을 뿐 절도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 1심 “판매보다는 무료로 생각할 가능성 있어 절도 고의 인정 어렵다”

1심인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1단독 우인성 판사는 지난해 9월 S씨의 절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하고, 상해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만 원을 선고했다.

우 판사는 “당시 판촉활동을 하던 피해자가 화장품 가게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에게 볼펜을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 점, 볼펜 시가가 2000원 상당인 점 등을 종합하면, 일반인 입장에서 위 볼펜은 유료로 판매한다기보다 무료로 나누어주는 판촉행사용 물건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어 절도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그러자 검사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볼펜을 집어갔으므로 절도에 해당함에도 무죄를 선고한 것은 부당하고, 형량도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항소했고, 반면 S씨도 “형량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며 각각 항소했다.

◈ 항소심 “절도죄의 죄책 묻기에 충분하다”

항소심인 수원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이성구 부장판사)는 지난 1월 S씨의 절도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1심 판결을 깨고, 절도와 상해 모두 유죄를 인정해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먼저 “판촉물을 거리 등에 비치한 채 누구나 제한 없이 가져가도록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그 경우에도 판촉용 물품을 대량으로 가져가는 등의 행위는 소유자의 의사에 반하는 절도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일반적으로 이 사건과 같이 고객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상대로 판촉물을 선별적으로 나눠주는 게 보통이고, 이런 경우 행인이 판촉 행사원의 양해를 구하지 않은 채 비치된 판촉물을 가져가는 것은 절도죄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양해 없이 탁자 위의 판촉물 볼펜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봐야 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곧바로 피고인에게 볼펜을 가져가서는 안 된다고 항의한 점 등을 종합해보면, 피고인에게 절도의 죄책을 묻기에 충분하다”고 유죄 이유를 설명했다.

◈ 대법 “무상으로 나눠주는 경우 많아, 집어가도 괜찮을 것으로 인식”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S씨의 절도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절도의 고의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라’며 수원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2010도4541)

재판부는 먼저 피해자인 K씨가 화장품 가게 앞에 탁자를 설치하고 판촉활동을 하면서 행인들이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탁자에 판촉용 볼펜을 쌓아두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S씨로서는 그 중 1개를 집어가도 괜찮을 것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기업들은 자사 제품의 홍보를 위해 일반소비자들에게 판촉품을 무상으로 나눠주는 경우가 많은데, 피고인이 가져간 볼펜도 시가 2000원 상당에 불과해 통상적인 판촉품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또 K씨는 피고인을 화장품 구매의사가 없는 사람으로 단정하고 볼펜을 회수했으나,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을 화장품 가게의 잠재적 고객으로서 볼펜을 판촉품으로 가져갈 자격이 있다고 인식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재판부는 특히 “피고인이 대낮에 K씨와 행인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판촉용 볼펜 1개만을 집어갔고, K씨의 항의를 받고 반환하기까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약 10미터를 걸어간 점 등을 종합하면, 비록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명시적인 허락을 받지 않은 채 볼펜을 가져갔더라도 절도의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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