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시각ㆍ청각장애인은 국선변호인 선정 대상”

“효과적인 방어권 행사 위해 법원이 직권으로 국선변호인 선정해 줘야” 기사입력:2010-06-21 11:27:47
[법률전문 인터넷신문=로이슈] 시각장애에 이어 청각장애를 가진 피고인에게도 그들이 반대하지 않는다면 효과적인 방어권 행사를 위해 법원이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줘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K(68)씨는 지난 2008년 6월 서울 동작구의 한 지역 주택조합의 사무장으로 있으면서 S씨에게 “3개월 내에 조합장이 돼 시행권을 주겠다”고 속여 2000만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사기)로 기소돼 1ㆍ2심에서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문제는 K씨가 청각장애 3급이었던 것. K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청각장애인임을 주장하며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기각당했다. 결국 K씨는 대법원에 이런 사실을 알리며 상고했고, 대법원은 K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이 재판 기록을 살핀 결과 K씨는 공판기일에 구술로 진행되는 변론과정이나 증거서류의 낭독 등 증거조사 과정에서 방어권을 행사함에 있어 상당한 곤란을 겪었던 것으로 확인했다.

실제로 지난 2월11일 “청각장애로 인해 1심 재판장이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한 상태에서 대충 답변을 했다”는 취지가 담긴 항소이유서 그리고 국선변호인 선정 청구서와 함께 장애인증명서를 제출했으나, 재판부는 바로 다음날 국선변호인 선정청구를 기각하고 이후 공판심리 과정에서도 변호인 없이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청각장애인에게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주지 않은 잘못을 지적하는 K씨의 상고(2010도4629)를 받아들여 벌금 7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구두변론에 의한 공판심리절차에서 자력에 의한 방어권 행사가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청각장애인의 경우 소송계속 중 공소사실과 관련된 신문내용이나 증거조사의 결과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공판심리에 임하게 됨으로써 방어권을 효과적으로 행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및 형사소송법상 국선변호인 제도의 취지 등에 비춰 법원은 피고인의 연령ㆍ지능ㆍ교육 정도를 비롯한 청각장애의 정도 등을 확인한 다음, 권리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청각장애인인 피고인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방어권을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인이 청각장애로 인해 1심 재판장의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한 상태에서 대충 답변을 했다는 취지가 담긴 항소이유서 등을 제출했음에도, 원심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선변호인 선정이 필요한 경우인지 여부에 대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따라서 사건을 다시ㆍ심리 판단케 하기 위해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낸다”고 판시했다.

◈ “시각장애 피고인에 국선변호인 선임 없이 재판 진행은 위법”

앞서 지난 5월 대법원 제1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도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시각장애인 J(46)씨에 대한 상고심(2010도881)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주지 않고 심리했다는 이유로 벌금 4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며 수원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낸 바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2급 시각장애인으로서 점자자료가 아닌 경우에는 인쇄물 정보접근에 상당한 곤란을 겪는 수준이므로 법원은 피고인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정하는 절차를 취했어야 했다”며 “그럼에도 국선변호인 선정 없이 공판심리가 이루어진 경우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되므로 형사소송법 제33조 제3항을 위반한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이 같은 판결들은 피고인이 시각장애나 청각장애 등을 갖고 있는 경우 그들의 연령과 지능 및 교육 정도 등을 참작해 권리 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주도록 한 형사소송법 조항의 의미를 확장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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