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안 가려고 노역장 선택, “병역기피 아냐”

대법, 병역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30대 5번 재판 끝에 최종 무죄 판결 기사입력:2010-05-21 15:55:01
[법률전문 인터넷신문=로이슈] 벌금미납자가 입영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검찰에 찾아가 노역장유치를 선택해 이후 병역을 면제받았더라도 병역기피가 아니어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4년 넘게 5곳의 재판부를 거쳐 심리한 끝에 최종 무죄로 판단했다.

P(34)씨는 1996년 2월 처음 입영통지를 받았으나 2006년 5월까지 10년 넘게 대학진학, 공군장교선발시험 응시, 대학원진학, 사법시험 2차시험 응시, 자격시험 응시 등의 사유로 7회에 걸쳐 입영을 연기해 왔다.

그런데 P씨는 2005년 3월 사기죄로 징역 10월 선고받아 복역하고 출소했고, 그해 12월 또 사기죄로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다가 31세가 되는 해인 2007년 1월 제2국민역으로 편입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P씨는 벌금납부 독촉을 받자 입영기일인 2006년 8월24일 부산지검에 스스로 찾아가 “벌금 700만 원을 납부할 능력이 없다”며 노역장유치처분을 받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에 검사는 그날 바로 벌금 700만 원에 대해 하루 5만 원씩 140일 동안 노역장에 유치하는 노역장유치집행지휘를 했고, 그에 따라 P씨는 2007년 1월10일까지 부산구치소에 수용됐다.

◈ 검찰 “병역기피 목적으로 도망쳐”…1심, 무죄

하지만 검찰은 “P씨가 병역의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도망쳤다”며 병역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고, 부산지법 형사4단독 박준용 판사는 2007년 4월 P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 판사는 “피고인이 병역의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사기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고, 또 당시 피고인의 경제형편이나 스스로 검찰에 찾아가 노역장유치집행을 받겠다는 의사표시를 하게 된 경위 등을 종합하면 병역의무를 기피할 목적이 없었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전혀 수긍하지 못할 바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자 검찰은 “P씨가 노역장유치처분을 받아 병무청이 P씨의 행방을 알 수 없게 했던 점 등에 비춰 보면 병역의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도망하거나 행방을 감춘 것”이라며 항소했다.

◈ 항소심 “병역의무 회피할 목적 충분히 인정돼 징역 1년”

이에 대해 항소심인 부산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윤근수 부장판사)는 2007년 11월 검사의 항소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법시험 1차에도 합격한 경험이 있는 등 법에 문외한이 아닌데다가 특히 피고인도 인정하듯이 입영연기가 가능한 자격시험을 알아보는 등 이미 병역법 관련규정에 대한 숙지가 있었던 점 등을 종합하면 병역의무를 회피할 목적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도망’에 대해서도 “입영 전에 피고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국가기관의 형벌집행이 개시됐다면 몰라도, 피고인이 검찰에 스스로 찾아가 노역장유치처분을 받게 됐다면 이는 병역의무가 있다는 사정을 모르는 국가기관의 형벌집행을 유도해 국가의 형벌집행과 병역의무가 충돌하는 듯한 상황을 야기함으로써 노역장에 유치되고 결국 병무청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신변이 위탁돼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게 됐다면 ‘도망’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 대법 “형집행기관에 자진 출두해 노역장유치 받게 된 것에 불과” 무죄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지난해 2월 병역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P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도망이 아니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벌금을 납입하지 못한 자가 비록 병역을 기피할 목적이 있었더라도 형집행기관에 자진 출두해 노역장유치를 받게 된 것에 불과하다면, 비록 결과적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게 되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병역법상 처벌대상이 되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국방부의 징집 또는 소집업무 및 법무부의 형집행업무 모두 대한민국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는 영역 내에 있는 업무로서 그 상호간 집행의 우선순위에 불구하고 협의와 조정에 의해 병무행정을 실현시킬 수 있는 상태에 남아 있으므로 피고인이 노역장유치를 받게 된 것을 가리켜 입영기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피고인의 신변이 위탁된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부산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홍성주 부장판사)는 지난 1월 1심과 같이 무죄 판결을 내렸고, 이에 검사가 다시 상고했으나 대법원 제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P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1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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