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비자금은 사용 않고 보관만 해도 횡령죄

검찰 수사 진행되자 뒤늦게 비자금 대학에 반환한 사무국장 유죄 기사입력:2010-01-18 14:11:19
[법률전문 인터넷신문=로이슈] 법인 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행위는 비록 그 비자금을 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하고 있었더라도 ‘횡령죄’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학교법인 A학원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던 L(65)씨는 1998년 A학원 산하 K대학이 외국어학관, 공학관 건물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시공업자에게 공사비를 지급한 뒤 자재비를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8억 2700만 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만들어 보관했다.

이후 2005년 10월 K대학의 다른 비자금 사건 때문에 검찰 조사를 받게 된 L씨는 조사 직후 자신이 만든 비자금마저 발견되면 수사가 더 커질 것으로 판단해 향후 검찰 수사에 대비해 보관하던 비자금으로 부동산을 매입하고, 잠적했다가 2007년 자수하면서 학교법인에 반납했다.

결국 횡령 혐의로 기소되자 L씨는 “대학의 여러 상황 등이 복잡하게 연관돼 있어 비자금을 학교에 넘겨주는 시기를 지체하게 됐던 것이지 결코 돈을 착복하기 위한 의도는 없었으며, 학교 문제가 마무리된 후에 이를 현금으로 학교 측에 모두 반환했으므로 불법영득의 의사가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1심인 대구지법 경주지원 박정대 판사는 2008년 8월 L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항소심인 대구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박승렬 부장판사)도 2008년 12월 L씨의 횡령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비자금을 보관하던 중 K대학에 대한 다른 비자금 수사 등 복잡한 사정이 얽히게 되자 사건이 확대될 것을 우려해 비자금을 부동산 형태로 변경해 보관하다가 후에 다시 현금으로 바꿔 반환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는 단순한 보관방법의 변경에 불과한 것으로서 피고인이 불법영득의 의사를 갖고 비자금을 사적으로 임이 소비했다거나 당초의 제한된 용도를 벗어나 이를 유용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 대법, 횡령 혐의 무죄 선고한 1ㆍ2심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을 달랐다. 대법원 제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건설업자에게 공사비를 주고 자재비를 돌려받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부동산을 구입한 혐의(횡령)로 기소된 L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대구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비자금 수사를 피하기 위해 비자금으로 부동산을 구입한 것은 학교 교육에 직접 필요한 용도로 사용한 것이 아님이 명백하다”며 “대학의 교비회계에 속하는 이 사건 비자금을 학교 교육에 직접 필요한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에 사용한 것은 설령 학교법인을 위하는 면이 있더라도, 그 사용행위 자체로서 불법영득의 의사를 실현한 것이 돼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또한 피고인이 부동산 구입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개인적인 목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했다는 점에 대한 신빙성 있는 자료가 많으므로, 피고인은 비자금을 불법영득의 의사로 횡령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이 K대학의 다른 비자금 사건의 수사를 받다가 잠적한 후 대학기부금 명목으로 돈을 반환한 것은, 이미 비자금 사건의 수사대상이 된 피고인이 비자금으로 인한 혐의를 면하거나 형을 감해보려는 의도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은 횡령죄의 불법영득의 의사에 관한 법리오해 등으로 인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어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케 하기 위해 원심 법원에 환송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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