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번호 잘못 알려줬어도 뺑소니 아냐”

강동명 판사 “피해자 일행의 거친 태도에 당황해 실수한 것” 기사입력:2009-11-30 10:51:44
[법률전문 인터넷신문=로이슈] 교통사고 현장에 15분 정도 있을 정도였다면 비록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휴대폰 번호 한자리를 잘못 찍어줘 연락이 닿지 않았더라도, ‘뺑소니’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학생 L(26)씨는 지난 3월31일 오후 10시15분께 대구 북구 태전동 대학로 내의 주점이 밀집한 골목길에서 승용차를 운전해 시속 약 20km로 진행하던 중 과실로 A(23)씨의 좌측 다리 뒷부분을 범퍼 앞부분으로 들이받았다.

그런데 사고 당시 A씨가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이 경미해 L씨는 사고 후 즉시 정차하기는 했으나 차량에서 내리지는 않은 채 창문을 열고 피해 상태를 확인했는데, 피해자는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당시 L씨가 차에서 내리지 않은 것은 피해자 일행은 건장한 체격을 가진 3명의 남자로서 그 중에는 술에 취한 사람도 있고 거칠게 말을 했을 뿐만 아니라, 조수석에는 자신이 여자 친구가 타고 있어 잘못 내렸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L씨는 차에서 내리지는 않았으나 사고 장소에서 10~15분 정도 있으며 사과를 하고, A씨의 친구에게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찍어줬는데 나중에 이게 문제가 됐다. 휴대폰 번호 11자리 중 한 자리를 틀리게 찍어준 것.

다음날 A씨는 병원에서 전치 2주의 상해 진단을 받았으나 약은 먹지 않고 물리치료만 5일간 받았다. 그런데 A씨는 L씨가 찍어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L씨가 받지 않아 화가 난 A씨 측이 L씨의 차량 번호를 기억해 고소한 사건.

이로 인해 L씨는 뺑소니 혐의로 기소됐으나, 대구지법 형사11단독 강동명 판사는 최근 L씨에게 ‘공소기각’결정을 내리며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강 판사는 먼저 “사고 장소가 중앙선도 없는 먹자골목 좁은 도로로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라 차량이 속력을 낼 수 없는 도로인 점, 차량으로 부딪치기는 했으나 피해자가 넘어지지 않을 정도였고 아프다고 하지 않은 점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L씨는 차에서 내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 피해자 일행은 건장한 체격을 가진 3명의 남자로서 그 중에는 술에 취한 사람도 있고 거칠게 말을 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조수석에 여자 친구가 타고 있어 잘못 내렸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하는데, L씨 진술에 납득이 가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 “L씨가 피해자 친구의 휴대폰에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찍어 주면서 한자리 틀리게 찍어주기는 했으나, L씨의 주장대로 피해자 일행의 거친 태도에 당황한 나머지 실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 판사는 “피해자는 피고인이 정차해 있는 동안 잘못했다는 사과 한마디 없이 허위의 휴대폰 번호를 찍어 주고 도주했다고 주장하나, 피해자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이 10~15분간 사고 현장에 머물렀는데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피고인과 그의 여자 친구가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냥 앉아 있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게다가 피해자는 피고인이 휴대폰 번호만 제대로 알려줬으면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 없었다고 진술하는 점, 피고인이 무면허도 아니고 가해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어 도주할 사정을 엿볼 수 없는 점, 피해자 일행이 3명이나 있는 현장에서 한참 동안 정차해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 일행이 차량 번호를 알려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에서 도주의사로 차량을 운전해 간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고 판단했다.

강 판사는 “실제로도 피해자 일행이 가해차량의 번호를 암기해 경찰에 신고한 점 등에 비춰 보면, 피고인이 실제로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에 의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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