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 예상해 미리 ‘질서유지권’ 발동은 잘못

국회 기물 파손 혐의 문학진ㆍ이정희 의원, 검찰 구형 보다 낮은 벌금형 기사입력:2009-11-27 13:40:21
[법률전문 인터넷신문=로이슈]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도 열리기 전에 소란행위가 있을 것이라는 개연성만으로 ‘질서유지권’을 발동하는 것은 국회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의 박진(한나라당) 위원장은 지난해 12월16일 한미FTA 비준동의안 상정 등 의사일정에 관한 여야 간사협의가 결렬되자 여야 간사들에게 이틀 뒤인 18일 전체회의를 개최해 비준동의안을 상정할 계획임을 통보하고, 비준동의안 상정을 반대하는 야당 관계자들의 회의장 점거 등에 대비해 16일부터 ‘질서유지권’을 발동했다.

이에 국회 경위 및 방호원 등은 박진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회의장 출입문을 잠그고, 회의장 안팎에서 질서유지를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12월18일 민주당 문학진 의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과 당직자들은 야당 의원들의 회의 참석을 배제한 채 단독으로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하려는 것으로 판단해 외교통상위원회 회의실에 들어가려는 과정에서 출입문 앞에 배치된 경위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회의실 진입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거세게 항의하며 집기 등을 부순 혐의로 기소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9단독 김태광 판사는 지난 23일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민주당 문학진 의원에게 벌금 200만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또 공용물건손상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민주당 당직자 6명에 대해서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공용물건손상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400만~500만원을 선고했다.

질서유지권 발동과 관련, 김 판사는 판결문에서 “국회법상 ‘질서유지권’은 국회 업무 과정에서 소란행위가 발생할 때 질서를 확보하고자 발동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위원회 회의와 관련해 장래 소란행위가 있을 것이라는 개연성만으로 사전에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것은 국회법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건에서 박진 위원장이 회의 개최예정일 2일 전부터 국회 경위 및 방호원들로 하여금 회의장 안팎에서 질서유지를 위한 활동을 수행하고 회의장 출입문을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개폐하도록 하는 내용의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것은 국회법에 근거하지 않은 질서유지권 발동”이라며 “따라서 피고인들이 경위 및 방호원들의 옷을 잡아당기거나 밀치는 등 폭행을 했다고 하더라도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지 않아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형법 제136조가 규정하는 공무집행방해죄는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적법한 경우에 한해 성립하는 것인데, 이러한 적법성이 결여된 직무집행을 하는 공무원에게 대항해 폭행이나 협박을 가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공무집행방해죄로 다스릴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한 것이다.

양형과 관련, 김 판사는 “국회 내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으므로 무겁게 처벌해야 마땅하지만 피고인들이 범행에 이르게 된 데에는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박진 위원장의 무리한 질서유지권 발동도 하나의 원인이 된 것이어서 범행 경위에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들이 앞으로 국회 내에서 폭력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고 국회의원 보좌관과 민주당 당직자들은 소속당의 지침에 따라 범행에 나아간 것으로서 국회의원들인 피고인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하면서 당직자들에게만 징역형을 선고해 공직 또는 당직을 박탈시키는 것은 가혹하다고 판단되는 점 등을 고려해 모두 벌금형을 선고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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