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전문 인터넷신문=로이슈] 성폭행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의사표현 능력이 인정되면 법정대리인인 부모의 동의가 없더라도 가해자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단독으로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A(당시 14세)양은 지난해 8월 서울 서초구 방배동 B씨의 자취방에서 B씨로부터 강간, C씨와 D씨로부터는 강제추행을 당했다. 이후 자신이 일하고 있는 애견센타 사장의 조언을 듣고 성폭행 피해를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 A양의 부모는 이혼했는데, 어머니는 연락이 되지 않고, 아버지는 재혼했는데 A양이 새엄마와 살기를 원치 않아 할머니와 생활하고 있었다. A양의 아버지는 딸이 성폭행 당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다가 항소심이 진행되던 중 딸이 처벌을 원치 않는 의사표시를 한 것을 알게 됐다.
성폭행 재판이 진행되자, A양은 자신을 성폭행한 3명과 합의한 뒤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했다.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가 제출된 것.
이에 재판부는 고민에 빠졌다.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6조 단서에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어 공소기각해야 하는지, 아니면 피해자가 청소년이므로 법정대리인인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비로소 공소기각해야 하는지가 문제됐기 때문이다.
◆ 1심 “처벌 철회 의사표시는 부모 동의 있어야 인정”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26형사부(재판장 배기열 부장판사)는 지난 4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는 법정대리인이 동의가 있는 경우로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A양의 처벌을 원치 않는 의사표시만으로 공소를 기각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종전 친고죄를 반의사불벌죄로 개정한 이유는 청소년의 성보호를 보다 두텁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청소년인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의사표시가 있으면 법정대리인의 동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처벌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종전에 비해 처벌이 강화되기는커녕 도리에 그 반대의 경우도 생겨 개정법의 입법취지가 몰각된다”고 판단했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처벌의사 없이도 수사와 공소제기를 할 수 있으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의사표시를 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또 현실적인 측면도 감안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본인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시가 있으면 법정대리인의 동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처벌할 수 없다면 회유나 협박, 사술 등의 방법으로 피고인이 판단력이 미숙한 어린 청소년 피해자로부터 부당하게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받아낼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항소심 “피해자 의사에 반해 공소 제기할 수 없어 공소기각해야”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제6형사부(재판장 박형남 부장판사)는 지난 6월 1심을 뒤집고 “A양 사건은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라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어 공소기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한 채 피고인들에게 유죄로 인정한 원심 판결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청소년인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의사표시를 함에 있어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필요한 것으로 해석하게 되면, 법정대리인이 처벌을 원치 않는 피해자의 의사에 동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처벌을 희망하는 경우 피해자의 의사와 달리 피고인을 처벌할 수 있게 된다”며 “이로써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문언과는 달리 오히려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라는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또 “반의사불벌죄에서 피해자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그 명시한 의사에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도록 하게 되면, 법정대리인이 피고인의 처벌을 결정하는 등 형사절차를 남용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특히 청소년의 부모가 이혼이나 재혼을 하거나 청소년과 오랜 기간 떨어져 사는 등 사실상 가족관계가 해체 또는 단절된 경우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요구함으로써, 오히려 피해자인 청소년의 권익이나 명예가 침해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법정대리인의 사망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는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는 경우로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입법체계를 무시한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며 1심 판단을 뒤집었다.
◆ 대법원 “법정대리인에게 피고인 처벌 결정 권한 부여하는 셈”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이용훈 대법원장, 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19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강간 등의 죄는 반의사불벌죄로서, 피해자인 청소년에게 의사능력이 있는 이상, 단독으로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해 처벌희망 여부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고, 거기에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볼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인 청소년의 나이, 지능, 지적수준, 성숙도 및 사회적응력 등에 비춰 범죄의 의미와 피해를 당한 정황, 처벌희망 여부에 관한 의사표시의 의미와 내용 그리고 효과를 이해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의사능력이 인정되는 이상 단독으로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한 처벌희망 여부에 관한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에게 의사능력이 있는데도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본다면, 법정대리인에게 명문의 근거도 없이 피고인 등에 대한 처벌희망 여부의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셈이 돼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 김영란 대법관 “청소년에 대한 보호 책무를 방기하는 것” 반대의견
반면 김영란 대법관은 “청소년은 의사능력이 불완전하다고 평가되는데 형사소송법 등에서 친고죄와 달리 반의사불벌죄에 대해 법정대리인이 관여할 수 있는 규정을 명시적으로 두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피해 청소년에게 단독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피고인 등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소송행위를 결정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헌법이 요구하는 국가의 청소년에 대한 보호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라며 반대의견을 냈다.
성폭행 피해 청소년 단독으로 합의 가능
대법 “부모 동의 없이도 처벌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시 가능” 기사입력:2009-11-19 19: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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