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전문 인터넷신문=로이슈] 범행을 극구 부인하는 살인 사건에서 뚜렷한 직접증거가 없지만 간접적인 여러 정황증거들 및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의해 살인 피고인에게 유죄를 인정해 항소심 법원도 중형을 선고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사채업자 A(41,여)씨에게 4500만원을 빌려줬던 K(38,여)씨는 2007년 3월6일 A씨의 집을 찾아가 헤어드라이기 전선과 허리띠 등으로 A씨의 목을 조르고, 목도리로 손발을 묶은 후 흉기로 목 부위를 5회 찔러 살해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K씨는 살인에 대한 직접증거가 없어 2회에 걸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됐다.
그러자 K씨는 “사건 당일 피해자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피해자에게 4500만원을 빌려줘 원금과 이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죽일 아무런 이유가 없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하지만 1심인 대구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김성수 부장판사)는 지난 5월 살인에 대한 직접증거는 없지만 여러 정황 등을 토대로 유죄로 인정해 K씨에게 징역 1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먼저 피고인이 경찰에서 처음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 피해자의 집에 가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가, 집 목욕탕에서 혈흔이 발견되자 뒤늦게 피해자 집에 갔다고 진술을 번복한 점에 주목된다.
또 피고인이 피해자와 평소 서로를 언니와 동생이라고 부르고 선물을 주고받는 절친한 사이였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폭력전과로 인해 살인범으로 몰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망현장을 보고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진술도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밤중에 친한 지인의 집을 방문하게 된 사람이 지인이 살해돼 있는 것을 보고도 신고하거나 소리쳐 주위의 도움을 청하지 않고 몰래 현장을 빠져 나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집 출입문 비밀번호를 알지 못하며 사건 당일 출입문이 5~10cm 정도 열려있어 손잡이를 손등으로 밀면서 안으로 들어갔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 집 출입문에는 자동으로 닫히는 장치가 설치돼 있어 출입문 닫힘 방지 걸이를 걸지 않으면 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문이 닫히면 자동으로 잠기게 돼 있다”며 “피고인의 진술은 누군가가 피해자를 살해하고 나가면서 일부러 출입문 닫힘 방지 걸이를 걸어 놓고 갔다는 것인데 이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자신의 옷에 묻은 혈흔과 관련, K씨는 “방안에 피해자가 손이 묶인 상태로 옆으로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 뛰어나오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방에 다시 들어가다가 넘어지면서 무릎과 정강이 부분, 양말, 손, 상의 소매에 피가 묻었으며, 너무 놀라서 신발을 싣지 않고 차량이 있는 곳까지 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넘어졌다고 주장하는 방의 문 근처에는 혈흔이 보이지 않으며, 거실과 계단에 피가 묻은 양말 자국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에 비춰 볼 때 피고인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자 K씨는 거실과 계단에 피가 묻은 양말 자국이 없는 이유에 대해 “양말에 혈흔이 묻은 것은 사실이나 뒤꿈치를 들고 발가락으로 걸어서 나왔다. 신발을 들고 뒤꿈치를 들고 발가락만으로 차가 있는 곳까지 약 30m 뛰었기 때문에 족적이 없을 수 있다”고 항변했다.
이 역시 재판부는 “살해 현장을 목격해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피고인의 진술처럼 3층에서 차가 주차된 장소까지 갔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배척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사망한 것을 알면서도 다음날 2회에 걸쳐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고, 1회 문자메시지를 보내 마치 자신은 피해자가 사망한 자체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증거를 조작했다”며 “이는 피고인이 범행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한 설명하기 힘든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특히 피고인이 태운 등산화가 피해자를 살해한 범인이 범행 현장에 신고 들어간 신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피해자를 살해한 범인이 범행에 이용한 등산화를 비닐봉지에 넣어 범행 현장 부근 길에 버린다는 것 자체가 상식 밖의 일이고, 더군다나 하필이면 범행장소를 방문했다가 사체를 발견하고도 신고하지 않고 몰래 빠져 나왔다는 피고인이 다른 날에 그 부근을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비닐봉지를 발견한다는 것도 너무나도 기막힌 우연인데, 게다가 피고인이 차에서 내려 이를 주워 다른 사람의 집에 가서 몰래 태운다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등산화를 태운 사실에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등산화와 관련해 한 이야기들, 그리고 등산화를 태운 이후에 이를 숨기기 위해 취한 여러 행동들에 비춰 보면, 등산화는 피고인이 범행과 관련해 사용한 유력한 증거물인데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태운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유죄를 인정했다.
◆ 항소심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위반되지 않는 한 간접증거로도 유죄 인정”
그러자 K씨는 “이 사건은 다른 범인이 원한이나 치정 관계에서 저질렀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도 유죄로 인정한 것은 것을 잘못”이라며 항소했고, 검사는 “형량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각각 항소했다.
이에 대해 대구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임종헌 부장판사)는 지난 8일 K씨와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1심과 같이 징역 14년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형사재판에서 유죄 인정이 심증이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해 형성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위반되지 않는 한 간접증거에 의해 형성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의 여러 정황들을 종합해 피고인이 사건 발생 당일 채권채무관계로 피해자와 다투던 중 피해자의 모욕적인 말과 태도에 순간 격분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개인성이 크다고 판단한 1심은 수긍이 간다”고 밝혔다.
양형 부당과 관련,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고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 증거인멸을 시도했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앞으로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남게 했음에도 피해회복을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에서 죄책이 가볍다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피고인이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 등에 종합해 보면 피고인에게 선고된 형량은 적정하고, 그것이 너무 무겁거나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구고법은 “이번 판결은 피고인이 범행을 극구 부인하는 살인사건에서 뚜렷한 직접증거가 없음에도 간접적인 여러 가지 정황 증거들 및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의해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하고, 우발적 살해범행에 대해 징역 14년의 중형을 선고한 점에 의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직접증거 없어도 정황과 경험칙으로 살인 인정
대구고법, 직접증거 없는 살인혐의 30대 여성에 징역 14년 기사입력:2009-10-12 20: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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