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전문 인터넷신문=로이슈] 담뱃값 정도나 사기 치는 단순 잡범을 무기수보다도 더 길지 모르는 50여년간 교도소에 잡아 둔 것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현행 형벌 및 교정제도의 문제를 꼬집어 눈길을 끌었다.
나아가 김삿갓 시인의 ‘난고평생’이라는 시를 인용하며 75세 할아버지의 고단했던 삶과 딱한 처지를 헤아려 선처했다.
1934년에 태어난 A(75)씨는 12세 무렵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됐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한 후 유랑극단을 따라다니게 됐다. 그러던 중 결혼을 하기도 했으나 처도 사별하고, 자식도 어려서 다 죽고 별다른 가족도 없었다.
A씨는 1962년 횡령죄로 징역 8월 이음대 사기죄로 징역 6월, 지난해 2월까지 각종 상습사기죄 등으로 46년 동안 교도소와 감호소 등만을 들락거리면서 혼자 어렵게 살고 있다.
A씨의 사기와 절도 등의 범행을 보면 대체로 범행 수법이 동일했다. 편의점이나 가게 등지에 들러 종업원에게 가짜 금장시계 등을 맡긴 후 20만원 전후의 담배를 외상으로 가져갔다.
이번 사건도 지난해 2월 교도소에서 출소한 A씨는 지난해 5월 충남 연기군의 한 마트에 들어가 “근처 회사 직원인데 모임 자리에서 담배가 필요해 나중에 담뱃값을 가져다 주겠다”고 속여 담배 60여갑, 15만 5000원 어치를 받아 간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현재 A씨는 중풍과 고혈압, 신경통, 관절염 등 노환을 앓고 있고, 수전증으로 한 손을 잘 쓰지도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는 상태다.
대전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김재환 부장판사)는 지난 5월21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7월을 선고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먼저 “피고인에 대한 선고에 앞서 김병연(김삿갓, 1807~1863)의 난고평생시(蘭皐平生詩)가 눈앞에 어른거린다”며 “난고는 김병연의 호로 ‘난고평생’은 ‘김병연의 일생’을 읊은 김병연의 자작시”라고 말문을 열었다.
어어 “시인(詩人)으로서의 김병연의 삶과 수인(囚人-갇힌 사람)으로서의 피고인의 삶이 완연히 다를 것도 같지만 조실부모하고 젊은 시절부터 유랑생활하며 떠돌다 결국에는 객사한 김병연의 삶을 그린 시가, 역시 조실부모하고 젊어서 유랑극단 생활을 하다 범죄에 연루돼 가족이나 재산 등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고 20대 후반부터 7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50여년간 이 교도소, 저 교도소, 심지어는 감호소까지 제집처럼 들락거리면서 인생을 허비하고, 급기야는 중풍에 걸려 한 손 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고, 고혈압 등 병에 걸려 험난한 인생이면서도 자질구레한 범죄 외의 다른 연명수단도 찾지 못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딱한 피고인의 처지를 읊은 것처럼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시 제목도 ‘난초 핀 언덕’을 의미하는 ‘난고평생(蘭皐平生)’이 아니라 ‘어렵고 괴로운 것’을 의미하는 ‘難苦平生(난고평생)’으로 읽혀진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렇게 돼버린 근본적인 잘못은 물론 피고인에게 있겠지만, 호구지책으로 담뱃값이나 사기 쳐 생활하는 잡범에 불과한 피고인이 어찌 보면 실질적으로 무기형을 선고 받은 무기수가 복역하는 기간보다도 더 길지 모르는 40년 이상을 복역하게 된 것은 바꿔 말하면 현행 형벌 및 교정제도가 피고인에 대해서는 실패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사건 범죄로 인한 피고인의 구금기간이 이미 7개월에 이르러 범죄에 대한 징벌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따라서 비록 돌아갈 고향집이나 기다려주는 가족이 없을지라도, 노쇠한 피고인이 1년씩이나 되는 기간을 교도소에서 보내도록 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인 스스로도 참회하면서 마지막 기회를 부여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으므로, 피고인에게 남은 시간이나마 심신을 잘 추수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또한 비록 늦었지만 방황을 끝내고 인간다운 삶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지막 기회를 주는 차원에서 누범 전과나 범행수법, 범행 횟수 등으로 인해 실형 자체는 불가피하지만 원심에서 선고한 형보다 대폭 감형해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46년 교도소 전전한 노인…항소심 선처한 사연
“현행 형벌 및 교정제도 문제” 꼬집어…“딱한 처지 헤아려 선처” 기사입력:2009-06-02 11: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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