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판사 “연판장 비수 꽂는 불행한 사태 없길”

“대법관 사퇴 들먹이는 행위는 목에 드리워진 칼날 의식하는 처신” 기사입력:2009-05-15 12:00:58
[법률전문 인터넷신문=로이슈] “판사들이 수뇌부의 결단에 대서는 행위는 향후 인사상 불이익을 걸어야 하는 일이고, 대법원의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신 분에게 사퇴를 들먹이는 행위는 목에 드리워진 칼날을 의식하는 처신인데, 연판장을 돌림으로써 선배법관에게 비수를 꽂아야 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각급 법원별로 단독판사회의가 잇따라 열리고 있고, 법원내부통신망에도 신영철 대법관을 성토하는 법관들의 글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대전지법 김동현 판사(사법연수원 30기)가 15일 내부통신망에 신 대법관의 사퇴를 강력히 촉구하는 글을 올렸다.

그의 글에는 판사로서의 고뇌가 가득 담겼고, 이용훈 대법원장에게도 호소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법관의 공개적인 의사표현은 이번이 19번째 판사다.

김 판사는 먼저 “과연 판사들이 철모르는 치기(어린애 같은 모양)로써 이렇게 행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진정한 판사가 되기에는 경륜이 턱없이 부족한 판사들에 불과한 걸까요”라고 물으며 “그와 같이 말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는 고집스런 소견”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우리의 소신을 피력함으로써 가시적인 결과를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현실권력에 대한 부담감에 짓눌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끄러움을 안은 채 재판의 현장으로 향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재판의 독립은 보장돼 있다고 국민들에게 말한들 누가 믿겠느냐”며 “이처럼 개탄스러운 사태를 접하고 우리가 부끄러움을 말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너희들은 재판의 독립을 소중히 여기고 있지 않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이어갔다.

◆ “대법관과 평판사들 중 누가 약자입니까”

김 판사는 “판사들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어떠한 압력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의 정당한 범위에 속한다”며 신 대법관에게 대법관과 평판사들 중 누가 약자냐고 되물었다.

그는 “저는 해외연수 신청을 앞두고 있고, 지법 부장판사들은 향후 고법 부장판사 승진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있고, 그밖에도 판사들이 수뇌부의 결단에 대서는 행위는 크고 작은 다양한 인사상의 불이익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며 “대법원의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신 분에게 사퇴를 들먹이는 행위는 우리 목에 드리워진 칼날을 의식하는 처신이 아닙니까”라고 따졌다.

특히 “엄중경고로 사태를 끝내겠다고 선언한 대법원장께 대서는 행위는, 계란으로 바위를 쳐보겠다는 실존적 결단이라고 할 수도 있다”며 “수백, 수천 개의 계란이 부딪히면 바위도 깨질지 모른다는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우리는 자신을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김 판사는 “이제 누가 우리를 믿고 재판을 맡기려 하겠느냐”며 “저는 대법관께서 자리를 보전하고 있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용인하고 있는 사법부 조직에 아무렇지도 않게 몸담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다”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저의 부끄러움을 국민에게 말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 한, 저는 이 부끄러움을 안은 채 재판의 현장으로 향할 수 없다”며 “대법관께서 그 자리에 계신 한 우리의 부끄러움은 해소될 수 없을 것이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역시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고 사퇴를 강력히 요구했다.

김 판사는 “대법관 임명을 기대하고 있는 법원장이 임명권자의 기호에 맞는 판결을 유도하기 위해 배당권을 임의행사하고, 재판장들에게 압력성 메일을 보냈다”며 “행정부 권력의 영향력이 사법부에 깊게 그림자를 드리운 이 중대한 사태가 과거 권위주의정부 시절에 사법부가 정권의 눈치를 보던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신 대법관을 직접 겨냥했다.

◆ “정작 정치적인 언사 되풀이 하는 분은 정진경 부장판사”

아울러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더라도 ‘정직’도 힘들 사안을 갖고 신 대법관에 대한 징계와 사퇴를 요구하는 소장 판사들의 행동은 법원 전체의 권위만 계속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며 단독판사들의 집단움직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서울중앙지법 정진경 부장판사에게도 반박했다.

김 판사는 “법관 개인의 품위뿐만 아니라 사법부 전체의 위신을 실추시킨 이 사건이 과연 단순한 ‘정직’만으로 무마될 만한 사건인지 되묻고 싶다”며 “정 부장판사는 소장 판사들의 행위가 철모르는 행동이거나 매우 정치적인 처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정치적인 언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분은 정 부장판사”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신 대법관의 사퇴를 요구하는데 재판의 독립이 왜 들먹거려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신 대법관이 어떤 재판 때문에 사퇴요구를 받고 있는 게 아니라, 신 대법관의 ‘부적절한 처신’ 때문에 사퇴요구를 받고 있는 것. 바로 그 ‘재판의 독립’을 침해한 처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동안 법원의 몇몇 구성원들이 부적절한 처신으로 법원행정처의 사퇴요구를 받고 순순히 물러났다”며 “도대체 그것보다 훨씬 중차대하고 이미 전국민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에서 당사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것이 과연 무리한 일이냐”고 따져 물었다.

김 판사는 “형사재판을 맡고 있는 재판장으로서 ‘피해의 회복 없는 사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피고인들에게 강조해 왔다”며 “신 대법관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인해 사법부의 위신과 신뢰는 급전직하했고, 일반국민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법관인 저 자신조차도 그동안 서울중앙법원에서 행해졌던 주요 사건들의 결론에 대해 의심이 가고 있는 형편”이라고 불신감을 드러냈다.

◆ “수뇌부에 항거가 돼 판사직을 걸어야 하는 때가 되더라도”

그러면서 “신 대법관은 사과했지만,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회복되지 않았다”며 “재판에 대한 압력을 행사한 이를 그대로 품어 안는 대승적 모습을 보여야 사법부의 신뢰가 회복되는 것인가요”라고 ‘경고’로 그친 대법원장도 겨냥했다.

그는 “우리가 이 사태에 대해 심각하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며 “만약 신대법관이 자리를 지키고, 의견을 말한 법관들이 희생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또한 부끄럽게 받아들임을 밝힘으로써 우리의 무고함을 변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그러면서 “저는 연판장을 돌림으로써 선배법관에게 비수를 꽂아야 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 거듭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그는 “만약 법관들의 정당한 의사표현행위가 집단행위라는 낙인으로 봉쇄되고 만다면, 그것이야말로 반민주적인 구태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라며 “우리는 자유로운 의사를 표출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수뇌부에 대한 항거가 돼 직을 걸어야 하는 때가 되더라도, 자신의 양심에 충실한 행위라면 명예롭게 그것을 감당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선비가 될 수 있다”고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김 판사는 “존경하는 선배법관께 이처럼 모진 말씀을 드려야 하는 지경까지 온 것이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지금 말하지 않는다면, 저의 양심은 두고두고 선비로서의 도리를 저버린 저 자신을 탓할 것”이라며 고뇌를 밝혔다.

끝으로 국민들에게도 한 마디 약속했다. 그는 “우리는 국민여러분께서 부여한 사법권력의 투명성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심각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는 이제라도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우리의 양심을 걸 생각입니다”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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