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못 춘다’고 맞아 의병전역…32년 뒤 국가유공자

보훈청, 불인정→1심, 인정→항소심, 불인정→대법원, 유공자 인정 기사입력:2009-04-07 18:41:57
[법률전문 인터넷신문=로이슈]군대 회식자리에서 ‘춤을 못 춘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한 이후 정신분열증을 앓게 됐다면 국가유공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977년 최초로 정신분열 진단을 받고 무려 32년 만에 국가유공자로 판정받기까지의 사연은 이렇다.

강OO(54)씨는 1976년 11월 육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중 이듬해 10월 내무반장이 주최한 회식에서 선임병으로부터 “춤을 추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총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맞아 기절했다.

이후부터 강씨는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당시 갑자기 당한 일이라 누구로부터 어디를 어떻게 맞았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다가 동료 병사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또 면회를 온 어머니로부터 외쪽 귀 뒤에 멍이 들어있다는 말을 듣고 알게 됐다.

가족은 걱정이 돼 다시 면회를 왔는데, 다른 병사로부터 ‘강씨가 잠도 안자고 정신이 이상해져서 야전병원으로 후송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차 면회를 갔다.

면회를 가서 만나보니 강씨의 귀쪽에 시커먼 멍자국이 있고 눈빛과 행동, 말이 이상해 외박을 받아 데리고 나와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결과 정신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강씨는 1977년 11월 정신분열증으로 판명돼 입원치료를 받다가, 이듬해 2월 의병 전역해 집중적인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계속 치료를 받아왔다.
1994년 민간병원에서 발급한 진단서를 보면 강씨의 발병경위에 대해 ‘군복무 중 상사로부터 머리를 구타당한 후 횡설수설, 엉뚱한 소리 및 행동을 했다’고 기재돼 있었다.

강씨는 진단서 발급일로부터 12년이 경과한 2006년에서야 국가유공자등록신청을 했다.

하지만 보훈청은 “정신질환과 군 공무수행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강씨가 대구보훈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등록 불인정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냈고, 1심인 대구지법 엄종규 판사는 2007년 12월 강씨의 손을 들어줬다.

엄 판사는 “원고가 입대 전에 정신질환 증세로 치료를 받은 적이 없고, 신체검사에서도 정상 판정을 받아 입대했으며, 입대 후에도 정상적으로 부대생활을 해 오다가 선임병으로부터 구타를 당한 이후부터 정신분열증이 발병한 점이 인정된다”며 “따라서 원고는 군복무 중 선임병 구타 등으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하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그러자 보훈청이 항소했고, 대구고법 제1행정부(재판장 최우식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는 급성 정신분열증이 발병한 직후 군병원에 입원한 기간 동안 선임병의 구타나 스트레스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점에 비추어 보면, 설사 원고가 선임병으로부터 부적절한 대우를 받았다고 가정하더라도 그로 인해 정신분열증이 발병했다고 추단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강씨가 대구지방보훈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유공자등록 불인정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는 군입대 후 정신적으로 별다른 이상증세 없이 생활해 오던 중 내무반 회식자리에서 ‘춤을 못 춘다’는 이유로 선임병으로부터 소총 개머리판으로 왼쪽 귀 부위를 구타당해 기절했고, 그 뒤부터 갑자기 정신분열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따라서 정신분열증의 발생과 선임병의 구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을 충분히 추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리고 이 같은 선임병의 구타로 인해 질병이 발생하게 된 원고는 국가유공자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규정한 ‘소속 상관 지휘하의 직장행사 또는 사기진작 등의 단체행동 중 사고로 상이를 입은 자’로서 공상군경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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