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권위’ 빌려 쓴 신영철 대법관 굴욕

본인 명예 먹칠에 서울중앙지법 판사들 나아가 사법부 명예 실추 기사입력:2009-03-17 12:15:44
[법률전문 인터넷신문=로이슈]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평소 소신을 판사들에게 전달하는데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대법원장의 ‘권위’를 이용한 것으로 밝혀져 본인의 명예에 먹칠함은 물론 서울중앙지법 판사들 나아가 사법부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대법원 진상조사단 발표 직후인 16일 오후 4시 30분께 대법원 정문 앞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사법독립 망쳤다!!! 신영철 징계하라'는 내용의 보드판을 들고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건은 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인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0월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가 야간집회 금지에 관한 집시법 조항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청한다.

다음날 다른 형사단독 판사가 촛불사건 피고인을 직권으로 보석을 허가하자, 신 대법관은 10월13일 오전 해당 판사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시국이 어수선할 수 있으니 보석을 신중하게 결정하라”라고 주문했다.

또 이날 오후에는 형사단독 판사 14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개최해 “집시법 위헌제청이 있다고 해서 재판 진행을 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발언을 하게 이른다.

급기야 14일 신 대법관은 무슨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법원장 업무보고’라는 제목만으로도 무게감을 주기에 충분한 이메일을 전날 회의에 참석한 형사단독 판사 14명에게 보낸다.

내용은 핵심은 “‘위헌제청을 한 판사의 소신이나 독립성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과 ‘(위헌제청을 하지 않은) 나머지 사건은 현행법에 의해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대법원장님의 뜻”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메일 서두에는 ‘대내외비’ ‘친전’(편지를 받은 사람이 펴 보라는 뜻)이라는 의미심장한 문구도 친절하게(?) 기재했다.

이 이메일은 나중에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이메일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며 대법원장이 신 대법관을 통해 일선판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혹으로 불거졌고, 결국 이번 진상조사에서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장으로부터 조사를 받는 전대미문의 ‘수모’를 겪게 만들었다.

그런데 진상조사단이 밝힌 신 대법관의 해명은 최고법관이라는 품격에 전혀 어울리지 않아 어리둥절케 한다.

신 대법관은 진상조사단 조사에서 “대법원장의 말씀이라고 적은 2가지 사항 중 첫 번째 ‘위헌제청을 한 판사의 소신이나 독립성은 존중돼야 한다’는 것은 (업무보고 당시 들은) 대법원장의 말씀 취지를 그대로 전한 것이지만, 두 번째 ‘나머지 사건은 현행법에 따라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본인의 생각을 가미해 ‘작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신 대법관은 “다른 판사가 위헌제청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재판을 진행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는 평소 소신을 대법원장의 ‘권위’를 빌려 판사들에게 전달하고 판사들을 설득하기 위해 마치 대법원장님의 뜻을 전하는 것처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대법관의 해명대로라면 일단 이 대법원장은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말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면 신 대법관은 회복되기 어려운 큰 오류를 범한 것이다.

자신의 부적절한 지시를 대법원장의 권위로 호가호위(狐假虎威)했다는 비아냥은 차치하더라도, 우선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소속 판사 또한 가장 많아 법원의 상징격인 서울중앙지법원장의 ‘위상’과 ‘권위’를 땅에 떨어뜨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전국 최대 규모의 법원으로 고등법원장급인 서울중앙지법원장의 권위에 판사들이 도전하거나 무시한다는 것으로 들릴 수 있는데, 이는 일선 판사들의 명예조차 실추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신 대법관이 최고법관으로서의 ‘자질론’에도 불을 지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법부 조직 전체에 치명타를 줄 수 있어 심각성은 더하다. 게다가 이런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착잡한 심정은 어찌 위로하고 아우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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