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사업을 추진하기 전부터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면 건설회사와 매매계약 협상 과정에서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았더라도 무조건 ‘알박기’(부당이득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이 나왔다.
김O(47)씨는 1991년 4월 울산 반구동에 있는 토지(40㎡)와 건물을 매수해 5년간 거주하다가 인근으로 이사하면서 토지와 건물을 친척에게 세를 줬다.
그런데 I건설회사는 2005년 1월 김씨가 소유한 토지가 포함된 반구동 일대에 아파트 건축을 위한 주택재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I건설회사는 2005년 11월경 사업지역 내 80% 정도 토지매매계약을 마친 후 김씨와 접촉을 시도했는데, 김씨는 거짓으로 실제 소유주가 이OO(46)씨라며 이씨와 만나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그 무렵 I건설회사는 사업시행과 관련해 부지매입비 등 약 1000억원 가량의 대출을 받은 상태여서 사업지연으로 금융비용만 매월 약 6억원 가량 소요되는 등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I건설회사 직원은 2006년 5월 매수대금으로 3억원을 제시하자 이씨가 거부하다가 석 달 뒤인 8월25일 당시 시세인 4400만원 보다 약 42배 비싼 18억 5000만원에 팔아 18억 6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인 서울남부지법 이원석 판사는 지난해 1월 부당이득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씨와 이씨에게 징역 1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해자 회사는 당시 1000억원이 넘는 대출을 받고 있어 금융비용만 하더라도 월 6억원 정도가 지출되는 형편이어서 사업의 신속한 진행이 절실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당시 피해자 회사는 급박한 곤궁의 상태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특히 “피고인들은 협상과정에서 매매계약을 체결할 것임은 분명히 하면서도 노골적으로 최고가를 받아야겠다는 뜻을 비추며 피해자 회사를 압박해 18억원에 계약하기로 합의했고, 대금 지급이 늦어진 벌칙으로 5000만원을 추가로 요구해 관철시키는 등 우월적 지위에서 협상을 지배한 점, 그리하여 다른 토지들에 비해 무려 40배가 넘는 가격에 판 점 등에 비춰 보면 현저하게 부당한 이득을 얻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항소심인 서울남부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한병의 부장판사)는 지난해 8월 이들이 현저한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범행 동기나 민사사건에서 원만한 합의가 된 점, 피해자가 선처를 바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1심 형량이 무겁다”며 1심 판결을 깨고, 이들에게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김씨와 이씨에 대한상고심에서 항소심 판결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남부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형법상 ‘부당이득죄’에 있어서 ‘궁박’이라 함은 ‘급박한 곤궁’을 의미하고, ‘현저하게 부당한 이익의 취득’이라 함은 단순히 시가와 이익과의 배율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개별적 사안에 있어서 일반인의 사회통념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발사업 등이 추진되는 사업부지 중 이른바 ‘알박기’ 사건에서 부당이득죄가 성립하려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개발사업 등이 추진되는 상황을 미리 알고 그 사업부지 내의 부동산을 매수한 경우이거나, 피해자에게 협조할 듯한 태도를 취해 사업을 추진하도록 한 후에 협조를 거부하는 경우와 같이 피해자가 궁박한 상태에 빠지게 된 데에 적극적으로 원인을 제공했거나 상당한 책임을 부담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정도에 이르지 않고, 단지 개발사업 등이 추진되기 오래 전부터 사업부지 내의 부동산을 소유해 온 피고인이 이를 매도하라는 피해자의 제안을 거부하다가 수용하는 과정에서 큰 이득을 취했다는 사정만으로 함부로 부당이득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피고인들에게 ‘부당이득죄’의 공소사실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것은 위법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과 관련, 대법원은 “‘알박기’에 대해 부당이득죄가 성립하려면 먼저 대상 부동산의 정상가격과 실제 매매대금 사이에 현저한 차이가 있을 것, 피해자가 피고인의 부당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 토지를 비싼 가격에 매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을 것, 피해자가 그와 같이 궁박한 상태에 몰리게 된 데에 대해 피고인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어야 한다”고 알박기 처벌 기준을 제시했다.
한편, 대법원은 지금까지 알박기 사건에서 유죄로 판단한 경우는 3건에 불과한 반면 무죄를 선고한 경우는 이번이 11번째다.
시세보다 42배 비싸게 팔았어도 ‘알박기’ 아니다
대법 “개발 전부터 부동산 소유하고 있어 알박기로 처벌 못해” 기사입력:2009-01-28 1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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