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잘못으로 뇌손상, 진료·마취의사 80% 책임

전주지법 “감기증상 있는데도 청진기 검사 후 전신마취 시술해 잘못” 기사입력:2008-12-18 16:08:28
수술을 앞둔 어린 환자가 기침을 한다고 고지했음에도 진료의사와 마취의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전신마취를 시키다 뇌손상을 입어 중증장애를 입었다면 진료의사와 마취의사에게 80%의 과실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OO(6)군의 어머니는 지난 2005년 7월28일 당시 만 2세9개월 된 아들이 골절상을 입어 정형외과 전문의 A씨가 운영하는 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의사 A씨로부터 속히 전신마취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틀 뒤인 30일 수술이 예정돼 있었는데, 이군의 어머니는 당일 수술에 앞서 집도의 A씨에게 “아들이 아침에 두 차례 정도 기침을 했다”고 알렸으나, A씨는 수술에 지장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마취과 전문의에게 전신마취를 시행하도록 지시했다.

마취과 전문의 B씨도 수술 직전에 이군의 어머니로부터 아이가 아침에 두 차례 기침을 했다는 말을 들었으나 간단한 청진기 검사만을 거쳐 건강상태가 전신마취에 지장이 없다고 보고, 다른 추가 검사 없이 곧바로 전신마취를 시행했다.

그런데 전신마취 도중 이군이 갑자기 기관지 경련으로 인한 호흡장애를 일으키자, B씨는 이를 약물 이상반응으로 판단한 나머지 마취제 흡입을 중단시켰을 뿐, 기관지 경련을 풀기 위한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이군은 전신마취 중에 발생한 기관지 경련으로 인한 호흡장애로 말미암아 무산소성 뇌손상을 입게 됐고, 그 결과 전신마취 시술 전에 특별한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던 이군에게 사지 마비, 시력상실, 청력저하, 인지기능저하 등의 중증 후유장애가 남게 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A씨의 병원과 계약한 보험사 측이 1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했지만 이군 가족은 부당하다며 보험금 청구소송을 냈고, 지난 10일 전주지법 제4민사부(재판장 이정석 부장판사)는 최근 보험사는 원고에게 4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전신마취는 환자의 중추신경계, 호흡기계 또는 순환기계 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환자의 건강상태에 따라 심각한 부작용이 올 수 있으며, 시술상의 과오가 환자의 사망 등의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위험성이 있으므로, 의사는 마취에 앞서 시술과정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에 대비해 환자의 신체구조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여러 가지 마취 방법에 있어서 그 장단점과 부작용을 충분히 비교·검토해 환자에게 가장 적절하고 안전한 방법을 선택해야 할 주의의무가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런데 원고는 수술 당일 두 차례 정도 기침을 하는 등 감기 증상을 보였고, 보호자가 수술에 앞서 이런 사실을 고지한 이상, 적어도 집도의인 A씨와 마취 의사 B씨는 원고가 감기 증상 등으로 인해 수술 도중 기관지 경련을 일으킬 수도 있음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 충분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기다가 감기에 걸린 환자는 수술 또는 마취 중에 기관지 경련이 발생할 가능성이 정상인보다 높다는 점과 전신마취 시술에 수반되는 부작용의 중대성 등을 함께 고려해 볼 때, 특별히 신속을 요하는 응급수술이었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는 이 사건에서 의사들은 원고의 신체구조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정밀검사 등을 통해 건강상태가 전신마취 시술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정상인지 여부를 세밀히 살폈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런 주의의무를 위반해 간단한 청진기 검사만을 거쳐 원고의 건강상태가 전신마취를 수반하는 수술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속단한 나머지, 갑작스런 기관지 경련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나 추가검사 등 당연히 행했어야 할 의료행위를 하지 않은 의료상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마취과 의사의 경우 원고가 전신마취 시술 중에 기관지 경련으로 인한 호흡장애를 겪게 됐으면, 흡입산소농도와 마취제의 농도를 높이고 마취깊이를 더욱 깊게 하면서 기관지 확장제 등을 투입해 기관지 경련을 푸는 조치를 취했어야 함에도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오히려 마취제 흡입을 중단시킴으로써 원고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킨 잘못도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의사들의 의료과실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만큼 병원과 보험계약을 한 보험사가 사고로 인해 원고가 입은 모든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다만 “원고의 가벼운 감기증상과 그밖에 밝혀지지 않은 체질적 요인이 사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므로, 공평의 원칙상 원고의 책임비율을 20%로 보아 피고의 책임을 80%로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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