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간 동거녀와 내연남 살해한 40대 무기징역

부산지법 “피고인의 범행에 대한 어떠한 변명 들어도 용납 안 돼” 기사입력:2008-12-18 11:49:11
동거녀가 자신의 돈을 갖고 나가 다른 남자와 동거를 하자 그들을 흉기로 무참히 찔러 살해하고, 또 싸움을 말리던 사람마저 흉기로 찔러 중태에 빠뜨린 40대에게 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A(44)씨는 2003년 7월 도박장에서 B(48·여)씨를 알게 돼 내연관계로 지내오던 중 2006년 헤어졌다가, B씨가 “오갈 데 없는 처지이니 도와달라”고 해서 다시 2007년 7월부터 지난 3월까지 제주시에 있는 A씨의 집에서 동거를 하게 됐다.

그런데 B씨는 동거기간 동안 ‘신용카드 대금을 결제해야 한다’, ‘모친의 병 때문에 치료비가 필요하다’는 등의 거짓말을 하면서 A씨가 폐지 수집 등으로 힘들게 모은 수백 만원의 돈을 가지고 부산으로 도박을 하러 다니는가 하면,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휴대폰 번호를 바꾸며 점점 A씨를 피했다.

A씨는 자신의 돈을 갖고 B씨가 부산으로 올라간 후 연락이 끊기자 B씨를 찾기 위해 지난 6월 부산에 올라왔는데, 주변사람들로부터 B씨가 C씨와 동거하면서 자신의 돈을 쓰고 다녔다는 말을 듣자 분개해 B씨와 C씨에게 적개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지난 7월5일 A씨는 C씨에게 전화를 걸어 “B하고 네가 같이 산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거냐. 네가 같이 살고 안 살고는 상관없는데 B가 나한테 사기쳐서 가지고 간 돈은 가져오라고 해라”고 말했는데, C씨가 “그게 아니다. B와 헤어졌다. 삼자대면을 하자”고 대답해 말다툼을 했다.

이에 A씨는 이날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올라와 흉기를 구입한 다음 B씨와 C씨를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이틀 뒤인 7월7일 C씨를 만났는데, C씨가 “할 말이 없다”며 그냥 가버리자, A씨는 C씨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냈고, 이에 C씨가 A씨에게 “지금 B를 보내줄 테니까. 네가 데리고 살든지 죽이든지 앞으로 나한테 전화하지 마라”고 말해 A씨는 B씨와 만나기로 했다.

이날 밤 10시 30분께 A씨는 부산 연제구 연산동에 있는 한 슈퍼 앞에서 B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C씨가 먼저 나타나 시비가 붙었고, 그 때 B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D(50)씨가 B씨의 연락을 받고 나타나 둘을 말렸다.

잠시 후 B씨가 나타나자 A씨는 B씨에게 “나한테 가져 간 돈으로 80만원어치 옷을 샀는데 누구와 같이 가서 샀느냐. 끝까지 거짓말을 하느냐. 네 아들 카드값을 갚는다면서 빌려간 80만원은 어떻게 했느냐”고 소리쳤다.

이에 B씨가 말대꾸를 하자 화가 난 A씨가 B씨를 때리려 하자 D씨가 말렸고, 순간 격분한 A씨는 바지주머니에 넣어둔 흉기를 꺼내 D씨의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 다행히 D씨가 피해 어깨근육 부위가 10cm 가량 찢어지는 상처만 입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은 A씨는 B씨의 옆구리, 배, 가슴 등을 마구 찔렀고, B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사망하고 말했다. A씨는 또 C씨의 왼쪽쇄골, 배 등을 찔러 숨지게 했다.

이로 인해 A씨는 살인,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부산지법 제6형사부(재판장 김재승 부장판사)는 최근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사람의 생명은 세상의 어떤 가치와도 대체할 수 없는 존엄한 것으로 국가나 사회가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숭고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비록 피해자가 피고인의 애정을 이용해 거짓말을 해 가면서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거액인 돈을 받아 도박 등에 사용한 사정이 있기는 하나, 그러한 사정이 피해자 B씨의 생명을 빼앗은 범행을 정당화할 수 없을뿐더러, 피고인의 질투심과 적개심이 별다른 잘못이 없는 C씨까지 영문도 모른 채 무참해 살해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또 “더구나 피고인과 피해자들 간의 관계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D씨가 단지 피고인을 말리려 했다는 이유로 그마저 살해하려고 했던 피고인의 범행은 어떠한 변명을 들어도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살해 방법을 보더라도, 피고인은 D씨를 찌른 후 곧바로 B씨와 C씨를 무참히 찔러 거의 즉사했는데, 이러한 연속적인 살해 행위에 아무런 주저함이 없었고, 흉기로 찌른 부위도 모두 치명적인 부위이며, 그 상처가 매우 깊어 피고인의 확고한 살해 의지를 짐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다 “피고인의 분노와 적개심을 상대방인 B씨는 물론 별다른 귀책사유가 없는 C씨까지 살해하고 D씨를 살해하려던 것으로 표출한 피고인의 범행은 타인의 생명이라는 존엄한 가치를 얼마나 경시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낸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들을 살해한 후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해 도주했다가 체포된 사정도 좋지 않은 정황이고, 또한 피고인은 피해자들의 잘못으로 인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변명하고 있어 자신의 범행에 대해 진정으로 반성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자신의 범행으로 고귀한 생명을 빼앗긴 유족들의 참담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달래려는 노력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사형은 인간의 생명 자체를 영원히 박탈하는 냉엄한 극형으로서 그 생명을 존치시킬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적용돼야 할 궁극의 형벌로서 죄책이 극히 중대하고 죄형의 균형이나 범죄의 일반예방적 견지에서도 극형이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비로소 허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앞서 살핀 모든 서정을 종합해 볼 때 피고인은 형법이 정하고 있는 최고형인 사형의 선택이 불가피하지만, 피해자 B씨가 어느 정도 범행의 동기를 제공한 사실이 인정되는 점, 피해자 D씨와 합의가 이루어진 점 등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해 형을 감경해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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