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얻은 숙소서 근로자 숨지면 업무상재해

채동수 판사 “전기합선으로 인한 화재는 사업주의 시설관리 소홀” 기사입력:2008-11-10 09:47:37
회사가 돈을 내고 빌린 월셋집 숙소에서 근로자가 화재로 숨졌다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에 따르면 청주시에 거주하는 A(35)씨는 충북 청원군에 소재한 전기회사에서 전기기사로서 현장소장으로 근무했다.

그런데 A씨가 다니던 회사는 2005년 4월 부산 부산진구 소재 재건축 아파트 공사를 시공하는 회사로부터 전기공사 하도급을 받았고, 이에 A씨는 동료 근로자 2명과 함께 부산에 내려와 전기공사를 담당했다.

이때 A씨의 회사는 여관을 숙소로 잡아줬으나, 숙소가 비좁고 공사현장과 거리가 멀어 야간공사를 하기에 불편해 A씨는 회사 대표에게 새로운 숙소를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고, 사장은 이를 승낙했다.

이에 A씨는 2005년 5월 공사현장 바로 인근에 있는 주택을 임대기간 12개월, 보증금 300만원, 월세 20만원에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동료들과 함께 거주했다.

그러던 중 2006년 8월2일 A씨는 공사현장에서 하루 종일 전기안전검사를 받은 후 퇴근해 공사현장 관계자들과 3차까지 가는 술자리 회식을 가진 후 만취해 숙소로 들어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취침 중인 새벽 2시경 숙소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해 숙소가 전부 불에 탔고, 그로 인해 숙소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A씨는 사망했다. 당시 A씨의 부하직원 2명은 숙소에서 빠져 나와 화를 면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결과 화재의 원인은 거실방에 있던 선풍기 내부 배선의 전기합선으로 의심된다는 소견을 밝혔다. 선풍기는 회사 소유였다.

이에 A씨의 처인 B(35·여)씨는 “회사가 제공한 숙소에서 잠을 자던 중 전기합선으로 추정되는 화재로 인해 남편이 사망한 만큼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보상 및 장의비지급을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망인이 거주하던 숙소는 망인이 속한 회사의 지배 및 관리 하에 있지 않아 업무상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그러자 소송을 냈고, 부산지법 행정단독 채동수 판사는 B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보상과 장의비부지급결정처분소’ 청구소송에서 “공단의 처분 중 유족보상 부분을 취소한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채 판사는 판결문에서 “비록 망인의 명의로 숙소를 임차하기는 했으나, 망인의 회사 대표로부터 저렴한 숙소를 얻으라는 지시를 받고 숙소를 임차하게 된 것이고, 그 목적은 야간작업 등 공사의 원활한 시공 및 원거리에 거주하는 소속 근로자들의 출퇴근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망인의 회사는 이 사건 숙소 이전에도 여관을 숙소로 지정한 바 있고, 망인 등은 화재가 나기까지 이 사건 숙소에서 1년2개월 이상 거주했고, 임대차 보증금 등 일체의 비용을 회사로부터 지원 받은 점 등에 비춰 보면, 이 사건 숙소는 회사가 망인 등 근로자들에게 숙소로 제공해 이를 지배·관리하는 시설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또 “화재 당시 숙소에는 화재경보장치나 소화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회사가 근로자들을 1년 이상 장기 거주하게 했음에도 숙소 이용에 관한 안전수칙을 마련했다거나, 안전교육을 시킨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에 비춰 보면, 숙소 화재로 인해 망인이 사망한 것은 사업주의 시설관리 소홀로 인해 재해가 발생한 경우에 해당해 업무상재해”라고 설명했다.

한편, 채 판사는 “망인의 회사에서 일체의 장례비용을 부담한 만큼 원고는 피고에게 장의비 지급을 청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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