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때 꽃마차 행렬을 하겠다고 신고해 놓고, 신고하지 않은 만장과 상여를 들고 장례행렬 형태로 행진했더라도 집시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도로에서 꽃마차 행렬은 허용되고, 상여 행렬은 과격시위 도구로 사용될 수 있어 안 된다며 장례 장구들을 ‘혐오’하는 경찰과 검찰의 인식에 쐐기를 박은 것.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전남 무안군 일로읍의 한 마을이장인 박OO(59)씨는 지난해 4월 11일과 19일 2회에 걸쳐 무안군 일로읍 일대에서 사찰의 납골당 설치반대 집회를 개최하면서 만장을 앞세우고 상여를 드는 등 장례행렬 형태로 행진을 했다.
◈ “장례도 관혼상제 하나로 괜찮아”
그러자 검찰은 “박씨가 꽃마차 행진을 신고하고도 상여 행진을 하는 등 신고한 집회 방법을 현저히 일탈하는 행위를 했다”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1심인 광주지법 목포지원 형사2단독 유지원 판사는 지난해 11월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 판사는 판결문에서 먼저 “이 사건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장례행렬 형태로 행진을 한 행위가 피고인이 신고한 시위방법인 집회 및 행진의 범위를 누가 보아도 뚜렷이 드러날 정도로 일탈해 공공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검사는 꽃마차를 이용한 행진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나, 이런 생각은 장례에 사용되는 장구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혐오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장례도 엄연히 혼례 등과 마찬가지로 관혼상제 중의 하나로서 사회가 변화돼 요즘은 보기 힘들더라도 예전에는 동네에서 만장을 앞세우고 상여를 들고 동네를 지나가는 것이 풍속이어서 이를 혐오스럽게 여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 판사는 “또 혼례행렬보다 장례행렬이 공공의 질서를 위해한다고 인정하기도 어렵다”며 “경찰은 상여 등을 허용할 경우 과격시위의 도구 등으로 쓰일 염려가 있어 이를 하지 못하도록 행정지도를 했다고 주장하나, 이러한 행정지도는 아무런 법률적 근거가 없음에도 헌법상의 기본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꽃마차의 경우도 얼마든지 과격시위의 도구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장례행렬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며 설명했다.
◈ 상여와 만장이 혐오감 준다?
그러자 검찰은 “피고인이 4월11일 집회 신고 당시 상여와 만장 등을 사용한다고 신고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용해 행진하고, 19일 집회도 꽃마차를 사용한다고 신고한 후 집회를 개최하면서 상여와 만장을 사용해 행진한 것은 신고한 집회방법을 현저히 일탈해 공공의 질서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인 광주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정경현 부장판사)도 지난 4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같이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집회신고 당시 2차로 도로 중 1개 차로를 이용해 행진할 계획이라고 신고했고, 당시 꽃마차 1대와 앰프차량 1대를 이용해 행진할 계획이라고 신고했으므로, 피고인이 신고와 달리 상여를 이용해 행진했더라도 신고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교통혼잡을 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상여와 만장이 공공에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은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의 제한을 정당화할 수 있는 사유로 보기는 어렵고, 애초 신고한 꽃마차도 얼마든지 시위의 도구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어 유독 상여만을 시위용품으로 변질될 우려가 잇다는 이유로 제한할 필요성이 희박한 점 등에 비춰 피고인의 행렬이 현저히 일탈하는 행위에 해당하지 않아 검사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시했다.
◈ 대법“상여로 교통혼잡 없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고, 대법원 제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집회 및 시위의 방법이 신고한 내용과 현저히 일탈한 행위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주최자로서는 사전에 그 진행방법의 세부적인 사항까지 모두 예상해 빠짐없이 신고하기 어려운 면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진행과정에서 방법의 변경이 불가피한 경우 등도 있을 수 있는 점 등을 염두에 두고 신고내용과 실제 상황을 구체적·개별적으로 비교해 살펴본 다음 이를 전체적·종합적으로 평가해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이 꽃마차를 사용한다고 신고하고서도 신고되지 않은 상여와 만장 등을 사용함으로 인해 기존 신고 내용과 비교할 때 더 큰 교통혼잡을 야기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신고한 집회의 범위를 현저히 일탈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시위에 꽃마차는 되고, 상여는 안 된다는 검찰 ‘머쓱’
대법, 신고하지 않은 장례행렬 집회 개최한 마을이장 무죄 확정 기사입력:2008-10-29 15: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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