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를 금하는 사업주의 지시를 어기고 술을 마신 상태에서 배에 승선하려다 실족해 바다에 빠져 숨진 경우도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고 판결이 나왔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해상준설업 등을 하는 H사 소속 부선(자체 동력 없이 다른 선박에 의해 이동하는 선박)의 크레인기사와 기관원으로 18년 동안 근무해 왔다.
그런데 A씨는 지난해 6월13일 오전 당직근무를 위해 부산 영도구 물양장 앞 해상에 정박시켜 둔 회사 선박에 출근해 동료와 함께 갑판을 청소하다가 비가 와 작업을 멈췄다.
이날 오후 4시 30분께 A씨는 옛 동료를 만나 물량장에서 도보 2분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소주 2병을 나눠 마시고, 인근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 1000cc를 마시고 헤어진 후 행방불명됐다.
A씨 회사 선박은 물량장 앞 도로에서 직선거리로 약 30m 거리에 정박돼 있었는데, 배에 승선하려면 물량장과 가까이 정박 중인 선박에서부터 선체 높이가 다른 여러 척의 선박을 차례로 건너야 했다.
이후 A씨는 6월17일 물량장 인근 바지선 두 척 사이 해상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사체 부검 결과 A씨는 익사한 것으로 판명됐으며, 혈중알코올농도가 0.23% 상태로 나타났다.
이에 경찰은 A씨가 음주상태에서 선박에 승선하기 위해 주변에 정박 중인 선박 등으로 이동 중 실족해 바닥에 추락해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그러자 A씨의 부인인 정OO(47)씨는 “당직업무 수행을 위해 선박에 승선하다가 실족해 바다에 빠져 사망한 것”이라며 유족보상 및 장의비 지급청구를 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근무 중 음주를 금하는 사업주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개인적인 사유로 술을 마셨다”며 “이런 음주상태는 24시간 선박을 경비해야 하는 업무내용으로 볼 때 사업주와의 근로계약에 의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인 만큼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결국 정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보상 및 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청구소송을 냈고, 부산지법 행정단독 채동수 판사는 최근 “피고는 원고에게 유족보상금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채 판사는 판결문에서 “인정사실에 의하면 망인은 회사 선박에서 벗어나 저녁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신 후 당직업무를 하기 위해 선박으로 돌아오던 중 정박 중인 다른 선박들을 건너다가 비가 와 바닥이 미끄러운 상태에서 술기운으로 인해 실족해 바다에 빠져 익사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망인이 업무를 위해 회사 선박에 승선하려면 이 선박 주위에 차례로 정박돼 있는 다른 선박들을 지나야만 하고, 그 선박들은 높이가 제각기 달라 평소에도 실족의 위험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채 판사는 “비록 망인에게 근무시간 중 사업주의 지시를 어기고 음주를 하는 등 잘못이 있었더라도 음주가 망인의 전적인 사망원인이라고 볼만한 자료가 없다”며 “따라서 망인이 업무수행을 위해 선박에 승선하는 과정에서 실족해 익사한 사고는 망인의 업무에 통상 수반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보여 업무수행 중의 재해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음주 후 승선하려다 실족사한 경우도 업무상재해
채동수 판사 “평소에도 실족 위험 있어 익사 사고는 업무수행 중 재해” 기사입력:2008-10-13 09:5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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