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어떤 물건을 ‘위험’한 흉기로 판단할까

가중처벌 하는 폭처법 기준은…자동차 열쇠는 해당 안돼 기사입력:2008-05-26 14:20:40
자동차 열쇠로 배를 찔러 복막이 찢어져 수술을 받았더라도 자동차 열쇠는 ‘위험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흉기 또는 기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고 폭력을 저지른 경우 형을 가중하는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정OO(55)씨는 지난해 6월16일 오후 9시10분께 인천 학익동에 있는 모 빌라 주차장에서 양OO(32)씨와 주차 문제로 시비가 돼 양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밀치면서 갖고 있던 자동차 열쇠로 양씨의 배를 1회 찔러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검사는 정씨가 양씨를 찌를 때 사용한 ‘자동차 열쇠’를 가중 처벌하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의 ‘위험한 물건’으로 판단해 기소했다.

1심인 인천지법 박준선 판사는 지난해 12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흉기 등 상해)로 불구속 기소된 정씨에게 누범기간에 근신하지 않고 복막을 관통 시켜 수술을 받게 한 점만 ‘상해’로 인정해 징역 6월을 선고했다.

자동차 열쇠가 위험한 물건인 흉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박 판사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찌를 때 사용한 자동차 열쇠가 상대방이나 제3자가 살상의 위험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인정되는 위험한 물건에 해당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이 부분은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검사는 “자동차 열쇠가 살상용으로 만들어진 물건은 아니지만 쇠로 뾰족하게 만들어져 사람의 신체를 찌른다면 피부가 찢어지는 등의 상해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점, 실제로 피해자의 복부가 5cm 가량 관통해 수술을 받은 점 등을 종합하면 자동차 열쇠는 ‘위험한 물건’에 해당한다”며 항소했다.

이에 대해 항소심인 인천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홍경호 부장판사)는 지난 2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자동차 열쇠를 사용해 상해를 가했더라도 이로 인해 사회통념상 피해자나 제3자가 생명 또는 신체에 위험성을 느꼈으리라고 보여지지 않으므로, 자동차 열쇠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결국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대법원 제1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정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징역 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5일 밝혔다. 결론적으로 자동차 열쇠는 위험한 물건인 흉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칼, 총 등의 무기나 폭발물과 같이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물건이 ‘위험한 물건’에 해당된다는 점에는 이론이 없으나, 물건의 성격이나 용도상 위험한 물건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불분명한 사례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즉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구체적인 사안에서 사회통념에 비춰 그 물건을 사용하면 상대방이나 제3자가 생명 또는 신체에 위협을 느낄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시각이다.

그렇다면 대법원이 ‘위험한 물건’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사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기본적으로 쇠파이프와 각목과 같이 보는 것만으로도 움츠려들 수 있는 물건을 위험한 물건으로 판단하고 있다.

빈 맥주병이나 양주병 그리고 생맥주잔과 같이 사람에게 집어던지거나 내리칠 경우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물건도 위험한 물건으로 보고 있다.

또 자동차와 돌, 의자도 흉기로 간주한다. 실탄이 장전되지 않은 공기총도 범인이 언제든지 실탄을 장전해 발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위험한 물건’으로 판단하고 있다.

당구큐대의 경우 사안별로 좀 다르다. 피해자에게 농약을 먹이려하고 당구큐대로 폭행한 경우 대법원은 농약과 당구큐대를 위험한 물건으로 간주한다.

반면 당구큐대로 피해자의 머리를 3∼4회 가볍게 톡톡 때리고 배를 1회 밀어 폭행했으나, 피해자에게 어떠한 상해가 발생한 흔적도 없고 피해자도 그 폭행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은 경우 당구큐대는 위험한 물건으로 보지 않는다. 이와 유사한 폭행의 경우 당구공도 위험한 물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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