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 경미해도 구호 없이 현장 떠나면 ‘뺑소니’

대법, 교통사고 뺑소니 무죄 선고한 원심 깨고 유죄 판결 기사입력:2008-05-16 20:46:26
경미한 교통사고라도 피해자에 대한 구호조치나 인적사항 및 연락처를 주지 않고 사고 현장을 벗어나면 뺑소니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택시기사 김OO(49)씨는 2006년 8월17일 새벽 2시30분께 택시를 몰던 중 광명시 철산동 모 주유소 앞 도로에서 신호대기로 정차했다가 출발하면서 변속장치 조작 미숙으로 차를 후진시켜 뒤에 있던 한OO(31)씨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그럼에도 김씨는 택시에서 내려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채 그대로 운전해 갔고, 이에 한씨가 약 100m 가량 뒤쫓아가서 김씨의 택시를 막아서면서 정차시킨 후 항의했다.

김씨는 “차를 한쪽으로 빼자”고 안심시키는 척하더니 또 다시 그대로 도망쳤고, 이에 한씨가 경찰에 신고했다. 한씨는 전치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진단을 받았고, 앞범퍼 차량 수리비도 33만 7000원이 나왔다.

결국 김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도주차량)와 타인의 차를 손괴한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기소됐고, 수원지법 안산지원 구광현 판사는 지난해 5월 김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과 8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했다.

그러자 김씨는 “사고를 낸 적이 없고, 설령 사고가 났었더라도 이를 인식하지 못했으므로 도주한 것이 아니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인 수원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한주한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김씨의 항소를 일부 받아들여 1심 판결을 깨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을 뒤쫓아가 항의하는 등 사고 전후의 정황에 비춰 볼 때 피고인에게는 적어도 미필적으로는 사고로 인해 피해 차량이 손괴됐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며 도로교통법 위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뺑소니 혐의는 유죄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 차량의 파손 정도 등에 비춰 사고로 인한 충격의 정도가 매우 경미했던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가 사고 다음날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았을 뿐 그 외 투약 등의 조치는 받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하면 전치 2주의 진단을 받았더라도 피고인으로부터 구호를 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이번엔 검사가 상고했고, 대법원 제2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최근 “뺑소니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조치는 수긍할 수 없다”며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며 수원지법 본원 합의부로 돌려보낸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먼저 “치상 후 도주죄는 사고를 낸 운전자가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고현장을 이탈해 사고를 낸 자가 누구인지를 확정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함으로써 성립된다”며 “피해자를 구호할 필요가 있었는지 여부는 사고의 경위와 내용, 피해자의 나이와 상해 부위 및 정도, 사고 뒤의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해자가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고, 사고 다음날 병원에서 물리치료까지 받았다면 구호의 필요가 없었다고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피고인이 즉시 정차해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은 물론 자신의 인적사항 등을 알려주지 않고 차량을 운전해 간 것은 치상 후 도주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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