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 뇌물로 받은 1억원 중 500만원을 돌려줬으니, 제가 받은 뇌물은 9500만원입니다” 무슨 소리일까. 1억원의 뇌물을 받은 세관공무원이 항소심 법정에서 재판부에 호소한 내용이다.
사건은 2004년 7월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관공무원 조OO(43)씨는 이날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주류수입업체 직원 이OO씨로부터 “위스키 과세가격 결정과 관련해 도와줘서 고맙다”며 사례금 명목으로 1000만원권 자기앞수표 10매 1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1심인 서울서부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장진훈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28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뇌물)로 구속 기소된 조씨에게 징역 5년에 추징금 1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1억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다만, 피고인이 아무런 전과 없이 성실하게 공무원 생활을 해 온 점,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며 반성하고 있는 점 등 참작했다”고 밝혔다.
◈ 뇌물 500만원의 절묘함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항소심 법정에서 조씨는 “받은 뇌물의 액수가 1억원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주류회사 직원 이씨로부터 돈을 받을 당시 현금 200만원을 이씨에게 건네줬고, 다음날에도 00만원 상당의 골프채와 100만원 상당의 액자를 줬기 때문에 이의 합계 500만원을 빼면 뇌물수수금액이 9500만원이라고 호소했다.
1억원과 9500만원의 차이는 불과 500만원인데 조씨는 왜 법정에서 자신이 받은 뇌물액수가 9500만원이라고 강변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공무원의 대가성 뇌물이 1억원과 9500만원은 형량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3000만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하면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의 적용을 받아 죄가 가중 처벌하도록 돼 있다.
특가법을 구체적으로 보면 뇌물로 받은 금액이 3000만원 이상 5000만원 미만이면 5년 이상의 징역, 5000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이면 7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게 돼 있고, 또 뇌물수수액이 1억원을 넘어가면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조씨가 받은 뇌물이 1억원에서 500만원 빠져도 형량이 최소 3년은 줄어들기 때문에 조씨는 항소심 법정에서 이씨에게 건넨 500만원을 뇌물금액 1억원에서 빼달라고 항변한 것이다.
여기에다 전과가 없이 공무원으로서 성실히 생활해 왔고, 또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는 경우 등과 같이 비록 뇌물을 받았으나 뇌물수수자에게 유리한 양형 요소가 있다면 작량감경을 한 번 받아 형량이 절반으로 낮아질 수 있다.
실제로 1심 재판부도 조씨에게 “피고인이 아무런 전과 없이 성실하게 공무원 생활을 해 온 점,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며 반성하고 있는 점 등 참작했다”며 최하 징역 10년형의 절반인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뇌물수수금액이 9500만원으로 받아들여지면 조씨는 뇌물수뢰액 1억원 미만에 해당되는 징역 7년에 해당되고, 여기에 작량감경을 받으면 징역 3년6개월까지 형량이 낮아 질 수도 있는 셈이다. 또한 자수까지 인정된다면 집행유예까지 노려볼 수 있다.
조씨도 이런 사정을 간파했기 때문에 자신이 500만원을 돌려줬으므로 실제로 받은 뇌물수수금액이 9500만원인데 1심 재판부가 이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며 항소했다.
또 공무원 업무를 수행하면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사실이 없고, 업무수행 전후에 걸쳐 금품을 요구한 적도 없으며, 모든 업무가 마무리된 후 회사 차원에서 임의로 제공한 것을 죄의식 없이 받았을 뿐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출금금지통지서를 받은 8월13일 오후 서울서부지검 권OO 검사와 통화할 당시 “지금 집인데 사무실에 가서 업무를 정리하고 내일 아침 일찍 검찰청으로 출석하겠다”고 약속했으므로 자수한 것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1심 재판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편 조씨와 통화한 후 검찰 수사관들은 곧바로 조씨의 집으로 가 조씨를 검거했다.
◈ 서울고법의 판단도 엄격
하지만 조씨의 이 같은 형량을 감경해 줄 수 있는 유리한 양형 요소가 있다는 주장은 항소심에서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고법 제4형사부(재판장 윤재윤 부장판사)는 지난 2일 조씨에게 1심과 같은 징역 5년에 추징금 1억원을 선고했다.
형량을 낮추고 나아가 집행유예까지 노린 조씨는 법원의 엄격한 판단 앞에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재판부의 판단은 이랬다. 먼저 뇌물수수금액과 관련, “뇌물을 받은 자가 그 후에 자신의 편의에 따라 그 중 일부를 타인에게 교부했어도 뇌물 전액을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이 1억원의 뇌물을 받은 다음 고맙다는 뜻으로 이씨에게 용돈을 주고 선물을 했을 뿐 뇌물의 일부를 돌려줬다고 볼 수 없어, 피고인이 수수한 뇌물은 1억원 전액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대가성이 없다는 조씨의 주장도 일축했다. 또한 자수 주장과 관련,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대로 검사에게 자신의 현재 위치를 알리고 다음날 검찰청으로 출석하겠다고 약속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런 사실만으로 자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피고인이 자수했더라도 자수한 자에 대해 법원이 임의로 형을 감경할 수 있음에 불과하다”며 자수를 주장하며 형량을 깎아달라는 조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형 부당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1심이 뇌물죄에 대한 법리를 오해했다거나 피고인이 자수했다는 주장은 이유 없는 만큼 1심이 선고한 징역 5년은 범죄사실에 대한 법정형에 작량감경을 한 후의 형기의 최하한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법률상 그보다 낮은 형을 선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시했다.
1억 뇌물 공무원 “판사님 500만원만 깎아주세요”
뇌물 세관공무원 항소심 법정서 형량 낮추기 위해 안간힘 기사입력:2008-05-08 22: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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