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클럽에서 만나 함께 폭탄주를 마셨던 여성이 하의를 벗은 상태에서 모텔방 6층 창문을 통해 뛰어내려 하지 완전마비라는 중상을 입었다면 급박한 상황에서 성폭행을 피하기 위한 행동으로 봐야 할까.
1심 재판부는 모텔방에 있던 남성에게 강간치상죄를 적용해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기초한 1심의 유죄 판단을 뒤엎고 무죄를 선고했다.
그야말로 극적 반전이다. 검사가 이에 불복해 상고한 상태여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되지만, 어쨌든 현재까지 남성은 졸지에 성폭행범으로 몰려 무고하게 옥살이를 한 셈이다. 항소심이 무죄로 판단한 배경을 상세히 짚어봤다.
◈ 강간치상 공소 사실 = 김OO(35)씨는 2006년 10월25일 저녁 친구와 함께 인천 주안동에 있는 나이트클럽에 놀러 갔다가 A(여)와 B(35·여)씨와 동석해 함께 술을 마신 뒤, 밤 11시40분께 김씨와 A씨는 인근 D모텔 606호에, 김씨의 친구와 B씨는 605호에 들어갔다.
김씨는 함께 투숙한 A씨와 억지로 성관계를 가지려고 했는데 A씨가 반항하며 김씨가 방심한 사이 방문을 열고 나가자 기분이 나쁜 상태로 모텔 방을 나섰다.
그런데 마침 방 앞에서 A씨를 기다리고 있던 B씨를 보자, 김씨는 욕정을 일으켜 B씨의 손목을 잡아 모텔 방안으로 끌고 들어가 “여자 때문에 기분이 나빴으니, 기분을 풀어야 한다”며 B씨를 침대에 밀쳐 넘어뜨렸다.
B씨가 반항하자 김씨는 목을 조르고 얼굴 등을 때리며 B씨의 하의를 모두 벗긴 다음 “나가면 죽여 버린다”고 위협해 반항을 억압한 뒤 애무하며 강간하려 했다.
그러나 B씨가 출입문 쪽으로 도망가자 김씨는 다시 B씨의 머리채를 잡아채 침대에 밀쳐 넘어뜨린 후 “이게 미쳤나. 도망가려고 하냐”라며 주먹으로 때리고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등 강간하기 위해 약 2시간 동안 폭행과 협박을 계속했다.
이에 극도의 공포심을 느낀 B씨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모텔방 6층 창문을 통해 뛰어내렸고, 이로 인해 B씨는 허리 골절 탈구 및 하지 완전마비 등의 중상을 입었다는 게 검찰의 공소 요지다.
◈ “난 결백하다…억울해” = 하지만 김씨는 다른 주장을 폈다. A씨가 성관계를 가질 생각이 없어 보여 10분 정도 있다가 방에서 나왔는데, B씨가 문 앞에 있어 A씨를 보내고 B씨를 들어오게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B씨가 화장실 앞에 청바지와 속옷을 가지런히 벗어 두고 화장실에 들어가 구토를 했고, 이에 등을 두드려주고 맥주를 주며 입가심을 하라고 한 다음 화장실에서 나와 TV를 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 후 40분이 지나도 B씨가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아 살펴보니 화장실에서 자고 있었고, 이에 깨우자 B씨는 화장실에서 나와 하의를 벗은 채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 해 침대에 눕혔다고 덧붙였다.
김씨에 따르면 침대에서 B씨가 성기를 애무해 줬는데 발기가 되지 않아 성관계를 갖지 못했고,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갔다 온 후 B씨에게 키스를 하려 하자 B씨가 목 부위를 손톱으로 할퀴면서 “샤워하고 오라”고 해 화장실로 가던 중 갑자가 B씨가 창문을 통해 밖으로 뛰어내렸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김씨는 B씨가 갑자기 창문을 통해 밖으로 뛰어내려 다친 것이지, 결코 B씨를 강간하기 위해 폭행·협박한 사실은 없다는 것이었다.
◈ 1심 “징역 7년…변명 일관해” = 이에 대해 1심인 인천지법 제13형사부(재판장 최승록 부장판사)는 지난해 8월10일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유죄 판단 근거는 이렇다. 피고인의 폭행과 협박 및 추락 경위에 관한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물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사건현장 상황 및 피해자가 쉽게 통과하기 어려운 창문의 구조에 비춰 볼 때 창문을 통해서라도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급박한 상황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피해자를 강간하기 위해 폭행과 협박을 가했는지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 거짓반응으로 나타난 점 등을 종합하면 폭행으로 생명의 위협마저 느낀 피해자가 이를 피하기 위해 유일한 탈출로인 창문을 통해 뛰어 내린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강간을 모면하기 위해 6층에서 창문을 통해 탈출하려다 하지 완전마비 등의 중상을 입게 함으로써, 앞으로 평생 휠체어에 의지해 살게 될 피해자가 입게 된 정신적 고통 또한 극심할 것 등을 감안하면 죄질이 중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피고인은 피해를 변상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범행을 모두 부인하고 있어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 항소심 “범행 강한 의심” = 그러자 김씨가 “정말 강간치상 범행을 저지른 적이 없다”며 항소했고, 서울고법 제3형사부(재판장 심상철 부장판사)는 4월17일 유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을 깨고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피해자가 하의가 벗겨진 채로 6층 창문을 통해 뛰어내린 점, 피해자가 구급차에 실려가면서 구급대원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고개를 끄덕인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강간치상의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기는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해야 하고, 이러한 정도의 심증을 형성하는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그런데 왜 무죄로 판단했나 = 그렇다면 항소심은 왜 무죄로 판단했을까.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조목조목 설명했다.
재판부는 먼저 피해자가 순순히 모텔에 들어간 점, 피해자는 폭행과 협박을 받으면서 얼굴을 많이 맞았다고 진술하나 얼굴에 어떠한 상처도 없는 점 등을 꼽았다.
또한 사건 당일 피해자는 아래로 갈수록 폭이 좁아져 벗기기 어려운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청바지와 팬티가 함께 가지런히 말린 상태로 방바닥에 놓여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자신이 입고 있던 청바지는 아래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것이어서 벗기기 쉬웠다고 진술하는 점도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여기에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은 모텔 방에서 여러 번 화장실에 갔다 온 적이 있는데, 당시 강간 및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고 화장실에서는 감시가 불가능한데도 피해자가 도망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강간하려는 과정에서 목 부분에 상처를 입게 됐다면, 이를 감추려 하는 것이 상식적인데, 피고인은 먼저 경찰관에게 상처를 보여주고 피해자로부터 당했다고 진술하고, 또 피해자가 6층에서 뛰어내렸다고 112에 신고한 것도 피고인이라는 점에서 피고인의 항변에 설득력이 있다고 봤다.
◈ 피해자 말 바꿔 신빙성 의문 = 재판부는 특히 피해자의 진술이 번복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피해자는 처음에는 폭탄주를 많이 마셔 기억이 없었다고 진술하다가, 이후 당시 폭탄주를 2잔 정도만 마셨고 나이트클럽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고 나니 정신이 멀쩡해졌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또 피해자는 처음에는 피고인이 강제로 여러 번 성교행위를 시도했다고 진술하다가, 항소심 증인으로 출석해서는 성기 삽입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했고, 여기에다 피고인이 성기를 애무해 달라고 해 어쩔 수 없이 4∼5회 정도 애무해 줬다고 진술했다가 나중에는 애무하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해 진술의 신빙성에 상당한 의문을 제기했다.
더욱이 A씨가 피고인으로부터 강간 내지 강제추행을 당할 뻔하다가 간신히 도망쳐 나왔다면 때마침 방 앞에 서 있던 피해자에게도 “위험하니 같이 도망치자”고 말하는 것이 상식적인데, 오히려 A씨는 피해자에게 “김씨가 맥주나 한잔 마시자고 한다”고 말한 후 피해자를 두고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집으로 그냥 가버린 점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여기에다 피해자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될 당시 구급대원의 성폭력을 당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을 당시에는 성폭행을 당하지는 않고 목만 졸렸다고 말을 바꾼 것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낮췄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피해자가 2000년 10월부터 2005년 4월까지 15회 정도 정신과병원에서 재발성 우울증 장애 또는 우울성 에피소드라는 정신과적 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점도 간과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피해자의 정신과적 질환이 완치됐다는 판정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런 모든 정황을 종합할 때 피해자의 상해가 피고인의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편 이에 불복한 검사가 지난 4월22일 상고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강간치상 누명? 옥살이…지옥과 천당 오가
1심 “징역 7년” → 항소심 “무죄” → 대법원 판단은? 기사입력:2008-04-23 12:4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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