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情에 법원도 관용…부모 살해 패륜아 선처

흉기에 찔려 죽어 가는 아버지 “아들이 범인이라고 말하지 말라” 기사입력:2008-04-21 10:04:21
생명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부모를 무참해 살해한 패륜아에게 항소심 법원도 아들의 범행을 덮어주려 했던 숨진 아버지의 사랑에 감복해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번 사건은 유산을 노린 아들에게 흉기에 찔려 죽어가면서도 아들의 범행을 덮어주기 위해 범행과정에서 떨어진 아들의 손톱을 자신의 입 속에 집어넣고 숨진 어머니의 모정이 담겼던 영화 ‘공공의 적’ 1편을 연상시킨다.

이OO(23)씨는 평소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아버지(56)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또 지난해 1월 어머니(50)로부터 주식투자 명목으로 지원 받은 3,700만원과 자신의 돈을 유흥비 등으로 몽땅 탕진해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돼 가족들로부터 질책을 받자 가족에 대해 반감을 품게 됐다.

그러던 중 이씨는 지난해 7월 어머니와 큰누나(28), 작은누나(26)씨에게 생명보험에 가입하게 한 후 가족을 모두 살해하고 보험금을 받아 경제적인 곤궁을 벗어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이를 위해 이씨는 가족에게 취직했다고 속이고, 회사에서 직원 복지를 위해 가족에 대한 보험료를 지원한다며 생명보험에 가입시켰다.

이씨는 제1회 보험료를 납입한 후 범행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 8월11일 아버지로부터 방안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야단을 맞자 감정이 상해 아버지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이날 새벽 장갑과 복면을 착용한 뒤 흉기를 들고 거실에서 잠자고 있던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이때 인기척에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났는데도 이씨는 아버지의 가슴 등을 3∼4회 찌르고, 아버지의 비명소리에 잠이 깬 어머니가 안방에서 나오자 어머니도 수회 찔러 그 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또 잠을 자던 누나들이 비명 소리를 듣고 거실로 나오려하자 큰누나와 작은누나마저도 수 차례 찌른 다음, 다시 피를 흘리고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흉기로 온몸을 10회 더 찔러 결국 아버지는 병원에 옮겨진 후 사망했다.

이 같은 아들의 반인륜적인 범행에도 불구하고 이씨의 아버지는 생명이 위독해 병원으로 옮겨지면서도 딸들에게 “절대 아들이 범인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유언한 것으로 재판과정에서 밝혀져 눈시울을 적셨다.

하지만 이씨는 외부 강도 범행으로 가장하기 위해 범행 이후 친구 집을 찾아가 범행의 흔적을 없애고, 태연하게도 병문안을 가장해 아버지와 누나들이 있는 병원 응급실에 찾아가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 1심 무기징역→검사 “형량 낮다” 항소→항소심도 무기징역

수원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홍승면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21일 존속살해 및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어머니가 준 돈을 탕진해 가족들이 자신을 질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데 돈을 벌기가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가족들을 생명보험에 가입시킨 뒤 생명보험금을 타기 위해 강도 범행을 가장해 자신을 보살펴 준 혈육인 부모와 누나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범행은 지극히 반인륜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또 피고인은 범행 과정에서 자신을 알아보고 애원하며 범행을 만류하는 아버지와 누나들을 무참히 찌르는 등 비정함과 잔혹함의 극치를 보여줬고, 살아남은 누나들이 앞으로 감내해 가야할 고통 등을 종합해 보면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는 극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으로부터 흉기에 찔러 죽어가면서도 피고인의 범행을 덮어주려 했던 아버지의 사랑, 피해자인 누나들 역시 ‘돌아가신 부모님이 피고인의 처벌을 원치 않을 것이고, 자신들도 선처를 바란다’는 취지의 탄원을 친척들과 함께 하는 점 등을 참작하면 피고인의 사형에 처하는 것은 다소 가혹해 보여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말했다.

이에 검사가 “피고인의 범행수법의 잔혹성, 범행 이후의 태도 및 반사회성 등을 고려하면, 무기징역의 형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 아버지가 흉기에 찔려 죽어가면서도 범행 덮어주려 해

그러나, 서울고법 제4형사부(재판장 윤재윤 부장판사)는 4월11일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대로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냉엄한 극형인 사형은 죄책이 극히 중대하고 죄형의 균형이나 범죄의 일반예방적 견지에서도 극형이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의 경우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킬 필요가 있지만, 아무런 전과가 없고 뒤늦게나마 참회하면서 범행경위 등에 대해 고백한 점, 피해자의 아버지가 흉기에 찔려 죽어가면서도 범행을 덮어주려 했던 점, 피해자인 누나들 역시 처벌을 선처를 바라는 탄원을 친척들과 함께 낸 점 등을 참작하면 사형은 다소 가혹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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