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가 낸 교통사고 발생보고를 받고도 경찰서장의 지시사항이라며 112 상황실이나 관할 지청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은폐한 지구대장에게 대법원이 직무유기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만을 인정해 벌금형을 확정했다.
그런데 당시 사건 발생보고를 받은 지구대장이 왜 부하직원에게 경찰서에 보고하지 말라고 지시하고, 특히 판사가 입원한 병원을 갔다온 뒤에는 경찰서장의 지시사항이라며 적극적으로 교통사고를 은폐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아 의문으로 남게 됐다.
왜냐하면 사고를 낸 판사가 지구대장에게 부탁을 하지 않았음에도 검찰의 공소사실에 나타난 것과 같이 경찰서장까지 나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질 않기 때문이다. 판사의 청탁이 있었는지 법원의 우회적인 개입이 있었는지는 풀리지 않는 대목이다.
더욱이 최초 사건 발생 당시에는 언론이 앞다퉈 보도하며 관심을 끌었으나, 1심 판결이 선고될 당시인 지난해 7월에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과 관련해 경찰수뇌부까지 연루된 사건이 발생한 탓인지, 판사 사건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며 묻혔다.
그러면서 항소심과 상고심은 진행됐으나, 어느 언론도 관심을 갖지 않아 사건은 결국 이렇게 의문을 남긴 채 지구대장의 단독 은폐 사건으로 마무리됐다. 로이슈가 자세히 보도한다.
◈ 사건 경위 = 사건은 이렇다. 대전지법 논산지원에 근무하던 김OO(41·여) 판사는 2005년 3월15일 오후 2시경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중앙선을 침범해 마주 오던 차량을 들이받아 상대방에게 전치 5주의 뇌진탕 등의 상해를 입히는 교통사고를 냈다.
당시 논산경찰서 논산지구대장으로 근무하던 황OO(39) 경감은 부하직원인 A경위로부터 교통사고가 발생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중상을 입었다는 보고를 받자, A경위에게 “본서에 보고하지 말고 기다려라”고 지시한 후 가해자와 피해자가 입원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다녀온 황 경감은 A경위에게 “교통사고 발생보고를 본서에 하지 마라. 경찰서장님의 지시사항이다.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지시하며, 교통사고 발생 보고를 경찰서 상황실에 하지 못하게 했다.
황 경감은 또 112 지령을 받고 교통사고 현장에 출동한 부하직원인 B경장에게는 112 상황실에 교통사고 ‘불발견’이라고 보고하도록 지시하고, 112 순찰차 근무일지를 허위로 작성하게 했다.
이와 관련 대전지법 논산지원 형사1단독 정연택 판사는 지난해 7월 황씨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를 적용해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황씨의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정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해야 할 경찰간부로서 중앙선 침범 교통사고에 대해 정당한 이유 없이 입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부하 직원들에게 이에 대한 보고도 하지 못하도록 지시하는 등 법집행의 공평성을 해하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점 등을 고려하면 중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 판사는 그러나 “한편 이 사건은 피고인의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거나 타인의 청탁을 받는 등 부당한 고려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고, 실제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합의하는 등 사건 처리에 있어 선처의 필요성도 있었던 점을 참작해 벌금형을 선고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황씨의 직무유기 무죄와 관련, 정 판사는 먼저 “피고인이 부하직원으로부터 교통사고 발생보고를 받았으므로 논산지청장에게 보고해 사건처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의식적으로 지청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직무유기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판사는 그러나 “공무원이 어떠한 위법사실을 발견하고도 직무상 의무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위법사실을 적극적으로 은폐할 목적으로 허위공문서를 작성해 행사한 경우에는 직무위배의 위법상태인 허위공문서작성 당시부터 그 속에 포함되는 것으로 작위범인 허위공문서작성, 동행사죄만 성립하고 직무유기죄는 따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직무유기 무죄 = 그러자 검사가 “직무유기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잘못이고, 벌금형 형량도 낮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대전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임복규 부장판사)는 지난 1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대로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112 순찰차 근무일지를 허위로 작성해 비치한 행위는 김 판사의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사실을 은폐하고 나아가 관내 지청장에 대한 보고의무 위반사실까지도 적극적으로 은폐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며 “이런 경우 작위범인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죄만 성립하고 부작위범인 직무유기죄는 따로 성립하지 않는다”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양형 부당과 관련, 재판부는 “피고인이 개인의 이익이나 타인의 청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범행 동기와 경위에 다소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며 이 역시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사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4월10일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다”며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황씨에 대해 벌금 4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편 김 판사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벌금 150만원에 약식 기소됐고, 그 뒤 인사 때 자리를 옮겨 현재 인천지법 부천지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판사 교통사고 은폐 사건…의문 남긴 채 종결
경찰서장 지시로 사건 은폐한 지구대장 벌금 400만원 기사입력:2008-04-17 10: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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