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 베테랑’ 한병곤 변호사…“전세 살아도 행복!”

국선 사건 무려 1000건 넘고…복지관에서 무료법률상담도 10년째 기사입력:2008-03-17 10:14:15
“선처 바랍니다”만을 앵무새처럼 떠드는 불성실 국선변호의 폐단을 막기 위해 국선전담변호인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소위 공들인 노력과 시간에 비해 돈도 되지 않는 ‘국선’을 무려 1000건 넘게 맡은 중견 변호사가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서울동부지법 앞에서 단독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한병곤 변호사. 그는 변호사 생활 10년 동안 국선변호를 1000건 넘게 했다. 산술적으로 따져봐도 1년에 매년 100건씩 한 셈이다.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며 대단한 숫자다.

그는 또 복지관에서 무료법률상담을 무려 10년째 하고 있고, 이런 사회적 약자를 위해 쏟는 애정과 배려 덕(?)에 한 변호사는 현재 전셋집에서 살고 있다. 변호사 10년차가 바라 본 국선변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병곤 변호사 / 사진 = 사건의 내막 유장훈 기자 지난 14일 기자가 한병곤(45) 변호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는 단순하다. 하나는 국선변호인으로서의 활동이 1000건을 넘었고, 게다가 변호사 10년 차이지만 아직 전셋집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들은 연간 20시간의 공익활동이 의무화 돼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시간당 2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이는 조금만 비틀어 보면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은 강제하지 않으면 매우 인색(?)하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게다가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국선변호보다 무료법률상담을 선호한다. 한 변호사가 눈에 띄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더욱이 한 변호사가 국선을 시작할 당시에는 국선변호인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재판부에 “선처 바랍니다”라는 상투적인 말만 되풀이해 ‘앵무새’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

이제 그의 얘기를 들어본다. 한 변호사는 남성고와 고려대 법대를 나와 1995년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지난 98년 변호사로 개업했으나, 첫 해부터 국선변호인으로 활동한 것은 아니다. 그는 “처음에는 다른 변호사들과 함께 사무실을 써 그분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국선변호활동을 하지 못하고, 개인사무실을 낸 2000년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선변호 동기를 묻자, 그는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라고 겸연쩍은 웃음을 보이며 쑥스러워 했다. 그러면서도 “국선으로서 법원에 협조한다는 생각과 무엇보다 어려운 분들에게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들이 겹쳐져 하게 됐다”고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한 변호사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국선 사건을 1000건 넘게 맡았다. 그는 “예전에 국선변호 사건이 많을 때는 한 달에 30∼40건 정도 있었는데, 제가 맡은 사건을 일일이 세어 볼 수 없지만 대략 1000건은 넘을 것”이라며 “저보다 훨씬 더 많이 한 분들도 있을 텐데요”라며 겸손해 했다.

국가가 피고인에게 변호인을 선임해 주는 ‘국선변호인’의 역할은 쉽지만은 않다. 때로는 막무가내 식이어서 도와주려 했다가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한 변호사는 “국선 활동을 하다보면 까다로운 피고인들이 있어 애를 먹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이 직접 고액의 수임료를 주고 변호사를 고용하는 ‘사선’ 변호사 이상으로 요구하는 분들도 있는데, 심지어 재판부에 ‘국선변호인과의 신뢰가 깨졌으니 국선을 철회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살짝 귀뜸했다.

하지만 수많은 사건을 맡아오면서 한 변호사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그는 “이런 분들을 만날 경우 ‘국선인데 너무 심한 게 아니냐’는 생각을 가지면 싸우게 된다”며 “그럴수록 세심하게 들어주고, 현재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낳을 지에 대해 설명해 주면 어느새 마음을 열고 국선에 믿음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 변호사를 보면 국선 피고인에 대한 애착이 남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 사진 = 유장훈 기자 국선변호인으로서는 베테랑이지만 한 변호사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국선변호인은 기본적으로 피고인을 위한 유리한 변론을 해야 하는데, 간혹 유리한 증거가 없는데도 피고인이 무조건 억울하다고만 다투는 경우 변호인으로서 끝까지 무죄를 주장해야 하는 것이 옳은지 난처할 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한 변호사는 “재판부는 엄격한 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증거도 없이 무작정 무죄만을 고집하다가는, 자칫하면 반성하지 않는 것으로 비춰져 오히려 피고인에게 더 불리한 상황을 초래해 결국 형량만 무거워 질 수도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경우 한 변호사는 어떻게 할까. 그는 먼저 피고인에게 증거관계를 제시하며 무죄에 대한 입증도 없이 무죄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어떤 선택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신중하게 생각해 보라고 설득하면서 절충안을 제시한다고 한다.

절충안은 이렇다. 재판부에 피고인의 억울한 점을 주지시키면서도 애매한 증인 선택을 하지 않는 등 다소 불리한 증거는 다투지 않아 법원의 수고를 덜어 줘 형량을 낮추는 것도 피고인을 위한 하나의 선택적 방법이라고 말한다.

법정에 증인을 신청하며 재판을 길게 끌고 갔음에도 나중에 무죄의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재판부가 형량을 세게 때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한 변호사의 설명이다.

국선변호도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한 변호사는 먼저 “솔직히 예전에는 법정에 선 피고인에게 ‘혐의를 다 인정하죠, 반성 많이 하죠. 다시는 이런 일 안 할 거죠’라고만 할 정도로 부실하게 했던 국선변호인들이 꽤 있었다”고 과거의 비판을 인정했다.

그러나 “요즘은 열심히 하지 않으면 피고인이 국선변호인 필요 없다고 하고, 재판부도 국선으로 지정하지 않는다”며 “그래서 예전과는 달리 사건 기록만 보지 않고 기본적으로 구치소에서 피고인을 접견하며 사건을 파악해 나간다”고 덧붙였다.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사건기록에는 보통 피고인에게 유리한 것은 잘 넣어주지 않고 불리한 기록만 기재돼 있기 때문에 구치소에서 접견하면서 억울한 부분을 들어주는 것부터가 국선변호인의 첫 번째 일이라고 한 변호사는 부연했다.

10년째 무료법률상담을 하는 한 변호사 / 사진 = 유장훈 기자 이와 함께 “‘사선’과 ‘국선’ 사건 처리에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한 변호사는 “아마 차이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처럼 들릴 걸요”라며 솔직히 조금의 차이는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변호사는 “대부분의 국선 변호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저 역시 차이를 두지 않고 사건을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최근 법원에서 판결이 선고된 국선 사건 하나를 소개했다.

40대 경찰관이 자기가 거주하는 아파트 입주자 회장을 맡고 있는데, 회장의 직무집행에 대해 60대 주민이 이의를 제기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찾아가 몸싸움을 벌이다 결국 쌍방 폭행이 일어나 기소된 사건이었다.

한 변호사는 “사건을 들여다보니 경찰관이 본분을 망각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했다는 생각이 들어 변론요지서를 적극 내면서 할아버지를 변호했다”며 국선 사건도 사선처럼 열심히 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는 “경찰관은 겸직을 해서도 안 되는데, 게다가 이의를 제기한다는 이유로 불만을 품고 술을 마시고 야간에 혼자 사는 69세 할아버지를 찾아가 주먹질을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와 설령 할아버지가 경찰관을 밀치거나 때렸더라도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정당방위 차원으로 무죄를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결과는 경찰관은 벌금 300만원을 받았고, 할아버지의 경우 한 변호사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는지 검찰은 벌금 200만원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한 변호사는 국선변호인으로서의 보람도 이 같은 경우에서 느낀다고 한다. 그는 “무죄도 좋지만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소박한 관점에서 볼 때 비록 피고인이 범죄를 저질러 수감돼 있지만 그가 살아 온 환경이라든지 범행동기를 분석한 뒤, 자백과 반성 등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 자료를 호소력 있게 재판부에 제시해 검찰의 구형보다 줄어든 형량을 선고받는다든지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경우 더 기분이 좋고 보람도 크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물론 극히 드문 경우지만 가끔 변호인의 적극적인 변호가 필요한 안타까운 사건의 경우 ‘사선’ 사건을 연기신청하고, 국선 사건을 해 줄 때도 있었다”는 그의 말에 신뢰가 생기기도 했다.

국선 사건만을 전담 처리하는 ‘국선전담변호인제도’가 생길 정도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국선변호인’의 신뢰도가 낮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변호사 수의 급증으로 사건 수임 경쟁이 치열해 지자 ‘국선’사건 시장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 변호사는 “예전에는 형사단독 사건은 할 만하다고들 말을 했는데, 지금은 예전과 달리 집중심리제 등으로 단독사건도 만만치 않다”며 “더욱이 국선전담변호인과 법률구조공단의 법무관들이 국선변호인으로 활동해 국선 사건도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국선변호 활동에 대한 보수는 다소 열악한 형편이다. 구속적부심의 경우 15만원. 본안 사건은 20만원인데 여기서 원천 공제도 해야한다. 물론 무죄를 이끌어 내면 인센티브가 주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사선 사건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한 변호사는 “2001년에 1년 이상 사건을 다투다 무죄를 이끌어 낸 사건이 있었는데, 그 때 35만원을 받았던 게 가장 많이 받은 보수”라며 “그래도 각종 기록 복사비나 택시비 등 인건비를 제외하고 나면 사실 손해고, 사건이 길어지면 사선 사건에도 지장을 받아 부담스런 경우도 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이어 “기본적으로는 국선변호 보수가 턱없이 적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약간 좀 상향해서 현실화하면 국선변호 활동이 더 충실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국선변호 보수 상향 조정을 희망했다.

한 변호사에게 눈에 띄는 게 또 있다. 변호사 10년 차임에도 자기 소유의 집이 없다. 현재 전셋집에 살고 있는 것. 물론 변호사라고 해서 모두가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고 있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40대 변호사가 전셋집에 사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일도 아닐 것이다.

한 변호사는 “쑥스럽지만 주택 전세에서 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사선 수임이 별로 없다 보니 돈을 별로 못 번 것인데, 결국은 능력이 없다고 보여져 창피하다”고 말을 아꼈다.

그래도 그는 국선변호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비록 큰돈을 벌지 못해 넉넉하지는 않지만 미력하나마 국선변호인으로서 피고인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 뿐”이라며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돈만 아는 세상에서 국선변호를 하며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자세를 낮췄다.

아내가 가끔 경제적인 불만을 제기할 때면 미안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한 변호사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TV나 주변에서 하도 ‘돈, 돈’ 그래서인지 요즘 돈 좀 벌었으면 하는 내색을 비추기도 하는데, 다행히 크게 닦달하지는 않아 고마울 뿐”이라며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표시했다.

뿐만 아니다. 한 변호사는 변호사 개업 이듬해인 1999년 1월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잠실복지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무료법률상담을 해 오고 있었다. 잠실복지관은 가정폭력 피해자 등의 쉼터 같은 곳.

변호사사무실 책장 한쪽에 진열돼 있던 감사패를 보고 기자가 묻자, 쑥스러운 듯 한 변호사는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놨다. 묵묵히 무료법률상담을 10년 넘게 해 오는 한 변호사의 모습을 보며 국선 사건을 사선 사건과 동일하게 취급하려 한다는 그의 말에 더욱 신뢰가 생겼다.

한 변호사의 마음 씀씀이도 겸손했다. 피고인들이 출소 후 찾아오는 경우도 있느냐고 묻자, 그는 “당연히 도움 받을 것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가끔은 음료수를 들고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하는 분들도 있다”며 “하지만 사실 그분들은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기에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 앞으로 범죄에 연루되지 않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소중한 삶을 잘 가꿔 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당부했다.

한 변호사는 끝으로 국선변호를 처음으로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어떤 피고인들은 정말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분들도 있는데, 그들에게 따뜻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해 줬으면 한다. 사실 국선변호인들이 좀 딱딱한 부분도 있는데 부드럽게 대하면 그들이 변호인들을 더욱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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