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유죄를 인정한 재판부가 판결문 3장 반 분량의 장문에 걸쳐 따끔한 질책과 훈계, 때로는 안타까움과 함께 애정어린 충고를 해 눈길을 끌었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은 ‘인지부조화’라는 심리적 메카니즘에 빠져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자기방어기제가 발동함으로써 과거의 (뇌물수수) 기억이 왜곡되고, 이는 확신으로 무장돼 놀라울 정도의 열정으로 범행을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잘못을 제3자에게 전가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피해가고자 했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고종주 부장판사)는 27일 정상곤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명목으로 8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징역 3년6월과 추징금 7947만원을 선고하면서, 범행을 부인하는 전씨의 행동에 대해 내린 판단이다.
특히 재판부는 “전군표 전 국세처장이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기 전 자수서를 작성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더 좋은 선물을 받을 수 있는 특전을 놓쳤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만약 전씨가 사건 초기나 적어도 재판진행 중에라도 순순히 혐의를 인정했다면 더 낮은 형량으로 선처 받을 수 있었음을 내비친 것으로, 전씨가 항소심에서 범행을 자백하고 인정할 경우 형량이 낮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이번 사건이 국세청과 나라의 명운이 달려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
재판부는 먼저 “피고인이 당시 어떠한 생각으로 정상곤씨로부터 돈을 받았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인사권을 보유한 국세청장이 인사권 행사대상인 부하직원으로부터 금품을 수령한 것은 명백한 뇌물이며, 권한에 책임이 따르는 점을 감안하면, 권한이 큰 만큼 책임 또한 크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세정업무의 최고책임자로서 뇌물로 국민과 조직원의 신뢰와 기대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비난가능성 또한 크다”고 덧붙였다.
또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변호인을 통해 “이번 사건 재판의 결과는 피고인의 명운이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국세청과 이 나라의 명예가 달려 있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단지 피고인과 정상곤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금품수수에 관한 법적 판단으로 피고인에게는 크나큰 고통이 따르겠지만, 국세청 및 소속직원 1만 8000명의 명예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으며, 더욱이 나라의 명예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이 사건을 거울삼아 국세청 공무원들을 비롯한 전국의 공무원들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각자 청렴한 자세로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공무를 명예롭고 엄정하게 수행하리라는 심기일전과 자기쇄신의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꼬집었다.
◈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심리를 파고들며 고심한 재판부
아울러 재판부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임을 내비쳤다. 재판부는 “오랜 기간을 공직에 명예롭게 근무하면서 정상까지 오른 두 사람이 객관적인 사실에 관해 서로 주장이 전혀 다른 점을 두고 우리는 그간 대단히 혼란스러웠고 당혹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상곤 청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피고인은 왜 사실을 부인하는가, 그리고 피고인의 말이 맞는다면, 정상곤 청장은 왜 없는 사실을 지어내어 조직의 수장을 모해하는가하는, 의문이 끝까지 법관을 따라다니면서 괴롭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정상곤 청장의 진술이 사실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린 지금, 피고인은 왜 그토록 확신에 찬 태도로 상대방을 비난하며 뇌물 공소사실을 끝까지 부인하고 있는가하는 점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심리를 파고들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인사문제와 관련해 지방청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갑자기 세상에 드러난 명예롭지 못한 이 사실은, 30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성실하게 공직에 근무하면서 능력이 검증돼 정무직 공무원에 오른 피고인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전문가들이 말하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심리적 메카니즘이 발현하고, 피고인은 어떤 방법으로든 이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또 “때문에 피고인은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자기방어기제가 발동함으로써 과거의 기억이 왜곡되고, 이는 확신으로 무장돼 자신이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한다는 점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놀라울 정도의 열정으로 공소사실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한편, 자신의 잘못을 제3자에게 전가하는 방법으로 당면한 위기를 피해가고자 했다”고 심리를 분석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심리적 상태를 어느 철학자는 <내 기억이 ‘내가 그것을 했다’라고 말한다. 내 자존심은 ‘내가 그것을 했을 리가 없다’라고 말하며 요지부동이다. 결국 기억이 자존심에 굴복한다>고 말했다”며 “이 같은 이해방식이 옳다면, 피고인은 공소사실을 부인해 당장은 분명히 얻는 것이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는 법관들의 추단에 불과할 뿐 피고인의 진정한 속마음은 아직도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 “진실은 불편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훈계
한편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재판부는 “사람은 누구나 때로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른다. 신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 이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 실수를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나 끝내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 실수한 지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며 “진실은 불편하더라도 우리는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훈계했다.
그러면서 “진실고백의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잠시 설 땅을 잃는 것이지만, 그 위험을 회피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이라며 “피고인이 끝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그 속사정을 일면 이해하면서도 우리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관련 법률 조항을 보면, 5000만원 이상의 뇌물을 수수한 경우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피고인은 상응한 벌을 면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피고인이 공직근무를 통해 국가에 기여한 점, 문제된 금품이 내부인사로부터 받은 점, 수뢰후 부정처사가 없었던 점 등 감경 사유가 있어 법률에 규정된 형을 절반으로 줄여 최하한의 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법원, 전군표에 따가운 질책과 훈계…애증
부산지법 “과거 기억 왜곡돼 놀라운 열정으로 범행 부인” 기사입력:2008-02-29 09:24:27
<저작권자 © 로이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로이슈가 제공하는 콘텐츠에 대해 독자는 친근하게 접근할 권리와 정정ㆍ반론ㆍ추후 보도를 청구 할 권리가 있습니다.
메일:law@lawissue.co.kr / 전화번호:02-6925-0217
메일:law@lawissue.co.kr / 전화번호:02-6925-0217
주요뉴스
핫포커스
투데이 이슈
투데이 판결 〉
주식시황 〉
| 항목 | 현재가 | 전일대비 |
|---|---|---|
| 코스피 | 6,912.37 | ▲104.16 |
| 코스닥 | 837.65 | ▲10.78 |
| 코스피200 | 1,088.61 | ▲17.45 |
가상화폐 시세 〉
| 암호화폐 | 현재가 | 기준대비 |
|---|---|---|
| 비트코인 | 110,078,000 | ▼184,000 |
| 비트코인캐시 | 372,100 | ▲300 |
| 이더리움 | 3,469,000 | ▼2,000 |
| 이더리움클래식 | 10,840 | ▼20 |
| 리플 | 1,976 | ▲3 |
| 퀀텀 | 1,180 | ▼2 |
| 암호화폐 | 현재가 | 기준대비 |
|---|---|---|
| 비트코인 | 110,096,000 | ▼103,000 |
| 이더리움 | 3,468,000 | ▼6,000 |
| 이더리움클래식 | 10,830 | ▼10 |
| 메탈 | 325 | ▲2 |
| 리스크 | 135 | 0 |
| 리플 | 1,978 | ▲4 |
| 에이다 | 293 | ▼1 |
| 스팀 | 62 | ▲0 |
| 암호화폐 | 현재가 | 기준대비 |
|---|---|---|
| 비트코인 | 110,080,000 | ▼170,000 |
| 비트코인캐시 | 372,600 | ▲3,500 |
| 이더리움 | 3,469,000 | ▼2,000 |
| 이더리움클래식 | 10,810 | ▲10 |
| 리플 | 1,978 | ▲5 |
| 퀀텀 | 1,182 | 0 |
| 이오타 | 64 | ▲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