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사법부 어떤 판결 내렸나…흥미진진

대법원, 당시 법률문화 등 시대상 담긴 판결록 편찬 기사입력:2008-01-29 21:27:57
대법원 법원도서관은 일제 점령기인 1915∼1916년 조선총독부 고등법원(현재 대법원) 판결이 수록된 ‘조선고등법원 판결록’ 제3권을 29일 발간했다.

법원도서관은 2004년부터 ‘조선고등법원판결록’(30권, 2만여쪽) 번역사업에 착수해 1, 2권을 민사편ㆍ형사편으로 나눠 편찬했다. 이 책에는 당시의 생활모습과 법률문화 등 시대상이 잘 담겨있다.

다음은 눈에 띄는 판결 내용이다.

◈ 장모 때린 사위는 이혼감 = 현행 민법상 자신의 부모가 상대방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 이혼사유가 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남편이 처의 어머니를 구타해 부상을 입히는 등 학대를 가한 경우 처는 이를 이유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는 판결이 있었다. (1915년 7월)

남편이 부부싸움을 하다가 아내와 장모를 폭행하는 등 행패를 부렸다가 이혼소송을 당하자, 사위는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지 않으냐”고 호소했지만 조선고등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당시에도 이혼을 구할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처도 남편에 대해 이혼을 청구할 수 있음을 확인하고, 배우자의 부모에 대한 구타 등 학대는 이혼을 구할 정당한 사유에 해당함을 인정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 기생이 유부남을 유혹한 사기 사건 = 매춘을 하는 기생 A씨는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돈을 뜯어내려고 유부남 김OO씨를 유혹해 성관계를 맺었다.

A씨는 김씨와 결혼해 첩이 될 것처럼 속이면서 자신의 빚을 갚아달라고 요구하며 수 차례에 걸쳐 1,800원을 받았다.

이후 A씨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사기로 처벌받게 되자, “기생과 놀아나면서 첩으로 삼고, 성관계의 보수로 돈을 준 것은 남자의 방탕행위에 불과할 뿐 사기죄로 따질 것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1918년 11월 조선고등법원은 “기생이 사기 수단을 써서 남자로부터 증여를 받은 경우 사기죄를 구성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이른바 ‘기생 축첩’ 관계에서도 사기죄의 법리가 그대로 적용됨을 밝힌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 홍수에 떠내려간 땅, 같은 장소에 흙 쌓이면 소유권 인정 = 26년 전에 홍수로 토지가 떠내려갔는데 나중에 같은 장소에 흙이 쌓여 다시 토지가 생기게 되자 소유권에 다툼이 생겼다.

1915년 4월 당시 조선고등법원은 “물로 인해 토지가 떠내려가고 같은 장소에 다시 흙이 쌓여 토지가 생기거나, 하천의 다른 변에 토지가 생긴 경우 떠내려간 토지의 소유자가 새로 생긴 토지의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집중호우가 잦은 우리나라에서, 하상이 정비되기 전인 조선시대에는 하천변 토지가 홍수 때 떠내려가기도 하고 물의 흐름이 바뀌기도 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이런 경우 토지를 상실하는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는 관습이 존재했음을 알려 주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 소송사기 = 한말의 개화사상가 박영효는 1906년 A씨에게 8,500원을 빌린 뒤 1910년 모두 갚았으나 A씨로부터 채권증서를 돌려 받지 않는 실수를 했다.

이에 A씨는 몇 년 뒤 차용증을 근거로 박영효에게 8,500원을 돌려달라며 민사소송을 냈다.

박용효는 이 소송에서 패소하자 A씨를 사기로 고소했고 경무총감부에서 화해가 성립돼 6,800원을 지급했으나, 이후 A씨는 소송사기로 기소됐다.

그러자 A씨는 6,800원을 받은 것은 화해계약에 따른 것으로 법원을 속인 것과 돈을 받은 것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16년 2월 조선고등법원은 “법원을 속여 승소판결을 받은 후 화해 명목으로 돈을 수수했더라도 기망행위와 돈을 받은 것은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소송사기 사건에서 승소 판결과 돈을 받은 것 사이에 화해 성립이라는 사정이 있더라도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밝힌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 일제시대 이자율 30% 제한 = 고리대에 의한 서민의 피해를 막기 위해 1911년 조선총독부령 13호로 ‘이식제한령(利息制限令)’이 제정돼 눈길을 끈다.

이에 따르면 원금이 100원 미만일 때 이자율은 연 30% 이하, 100원 이상 1,000원 미만이면 연 25% 이하, 1,000원 이상이면 연 20% 이하로 이자율을 제한했다.

이자율 계산 다툼에서 당시 조선고등법원은 “이식제한령에 의해 이율을 정해야 하는 원금은 당초 계약의 원금액”이라며 “일부를 변제해 원금액이 감소해도 당초의 계약이 여전히 존속하는 한 이율의 표준에 변경이 초래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증인신문조서에 입회인 1명만이 서명날인이 있는 것은 무효라는 판결도 있다.

조선형사령에 따라 사법경찰관이 급속 처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증인신문을 함에는 형사소송법에 의해 2명의 입회인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1916년 7월 당시 조선고등법원은 “신문조서에 입회인으로 단 1명의 서명날인이 있다면 무효이고, 나아가 무효의 증인신문조서의 기재를 증거로 인용해 범죄사실을 인정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당시에도 증인신문조서 등의 수사 내지 소송서류의 형식적 진정성립을 나름대로 엄격하게 심사했음을 엿볼 수 있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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