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범인식별절차 소홀한 범인 지목은 무죄

청주지법 “범인이라는 무의식적 암시 목격자에 줄 수 있어” 기사입력:2008-01-14 10:26:09
경찰이 범죄 용의자에 관한 정보를 목격자에게 일부 알려주며 단독 대면시키는 등 범인식별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면, 목격자가 범인으로 지목했더라도 그 진술은 신빙성이 낮아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택시운전기사 함OO(45)씨는 지난해 9월 2일 새벽 3시 30분경 청주시 우암동 북부시장 입구 등에 주차돼 있던 택시 2대에서 현금 21만 5,000원을 훔치는 과정에서, 마침 지나가던 택시기사 김OO(50)씨에 의해 붙잡히게 되자, 몸싸움을 벌이며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히고 도주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함씨는 “당시 택시영업을 하다가 졸음이 몰려와 택시운행을 중단하고 기억할 수 없는 도로에 택시를 정차하고 20∼30분간 잠을 자다가 택시영업을 계속했을 뿐, 이 사건과 같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범행을 부인했다.

그런데 피해자 김씨는 경찰이 함씨만을 대면하게 하고 범인인지 여부를 확인하자, 처음에는 “머리스타일이나 체격, 얼굴 등이 당시 목격했던 범인과 닮지 않았다”며 범인이 아니라고 진술했다.

이후 경찰이 “함씨에게 동종 전과가 있고, 집에서 범행도구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쇠꼬챙이가 발견됐다”는 말을 김씨에게 전해며 다시 범인식별실에서 함씨를 보게 하자, 김씨는 “함씨가 웃을 때 입 모양이 당시 목격했던 범인의 입 모양과 비슷해 범인이 맞다”고 진술을 바꿨다.

이에 대해 청주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오준근 부장판사)는 강도상해, 절도 혐의로 기소된 함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범인식별절차에서 용의자 한 사람을 단독으로 목격자와 대면시켜 범인 여부를 확인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기억력의 한계 및 부정확성과 구체적인 상황 하에서 용의자가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무의식적 암시를 목격자에게 줄 수 있는 위험성이 있어 다른 상황이 없는 한 신빙성이 낮다”고 밝혔다.

이어 “범인식별절차에 있어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게 평가할 수 있게 하려면, 범인의 인상착의 등에 관한 목격자 진술 내지 묘사를 사전에 상세히 기록한 다음, 용의자를 포함해 그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러 사람을 동시에 목격자와 대면시켜 범인을 지목하도록 해야 하고, 용의자와 목격자 및 비교대상자들이 상호 사전에 접촉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고인을 직접 대면한 후 머리스타일이나 체격, 얼굴 등이 당시 목격한 범인과 닮지 않았다고 진술한 바 있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도 피고인의 웃을 때 입 모양이 범인의 웃을 때의 입 모양과 비슷한 것 같기는 하나 얼굴 등은 닮지 않았다고 진술해 스스로도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고 있어 김씨의 진술은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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