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자에게 실탄 발사한 경찰관 책임 없다

서울고법 “무기사용 범위 벗어난 위법행위 아니다” 기사입력:2006-11-22 02:18:25
범인이 경찰의 수 차례의 정지명령과 경고사격에도 불구하고 계속 도주하다 경찰이 쏜 실탄에 다리를 맞아 부상당한 경우 국가는 손해배상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제22민사부(재판장 한위수 부장판사)는 경찰관이 쏜 총에 허벅지를 맞아 부상당한 이OO(23)씨와 그 부모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06나43790)에서 지난 16일 국가의 책임을 30% 인정했던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법원에 따르면 이씨는 2002년 5월18일 서울 반포동에서 마티즈 승용차를 훔치고, 23일에는 친누나 시어머니의 그랜저 승용차를 훔친 뒤 마티즈 번호를 번호판을 그랜저에 부착해 운행했다.

그러다 그 해 9월12일 서울 신사동에서 순찰 중이던 경찰에 적발됐고, 경찰은 승용차 번호를 조회해 도난 된 번호판 부착차량임을 확인하고 이씨에게 차량을 도로 우측에 정차시킬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이씨는 검문에 불응한 채 갑자기 인도로 돌진해 도주했고, 진행차도가 신호대기로 정체되자 중앙선을 침범해 역방향으로 운전하며 계속 도주해 경찰은 공포탄을 쏘며 추격했다.

이씨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더 이상 차량을 진행할 수 없게 되자 차에서 내렸고, 그 때 경찰은 이씨에게 다가가며 손을 들으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이씨는 불응하고 엎드리는 척 하면서 갑자기 뛰어 도주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경고사격으로 공중에 실탄을 발사했고, 그래도 이씨가 정지하지 않아 경찰은 “도망가면 쏜다”라고 반복해 경고했다. 그런데도 이씨가 계속 도주해 경찰은 이씨의 왼쪽 허벅지를 향해 실탄을 발사해 검거했다.

이씨와 부모들은 “무기도 소지하지 않고 경찰에게 격렬하게 항거하지도 않은 채 단지 도주만 했을 뿐인데 실탄을 발사해 맞춘 것은 경찰이 무기사용의 허용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만큼 가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경찰관은 아무런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고 경찰관을 공격하거나 위협하지 않은 이씨를 지원 요청 등을 통해 충분히 제압할 다른 방법이 있었다”며 국가의 책임을 30%로 인정했다.

하지만 항소심 법원이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절도죄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어 범인이라고 의심되는 자를 체포하기 위해 상당한 범위 내에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도난 된 번호판을 부착한 차량을 운전하는 이씨가 경찰의 정지명령을 무시하고 야간에 도심에서 인도로 진입하고 간선도로의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며 경찰의 수 차례의 경고사격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도주하는 상황이었고, 당시 추격중인 경찰은 급박한 상황이었으므로 다른 경찰에게 무전연락을 해 지원요청을 하거나 지원을 기다려 함께 검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경찰은 실탄을 발사해도 투항하지 않고 도주하는 이씨를 따라 잡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이씨의 신체 중 생명에 지장이 없는 허벅지를 겨냥해 실탄을 발사해 검거했음에 비춰 경찰이 실탄을 발사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한도 내에서 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경찰관이 직무상 불법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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