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끄려다 숨진 근로자…회사와 망인 책임비율

서경희 판사, 회사 80% 책임…망인의 과실 20% 기사입력:2006-11-12 17:35:50
공장 안에서 불이 나자 당시 건물 밖에 있던 근로자가 대피하지 않고, 초기에 불길을 잡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가 유독가스에 질식돼 쓰러져 상해를 입고 치료를 받다가 결국 사망한 경우라도 회사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구지법 민사51단독 서경희 판사는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다가 숨진 정OO(당시 44)씨의 유족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05가단88449)에서 지난 9일 “회사는 유족에게 9,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법원에 따르면 망인은 경산시에 있는 피고 회사 섬유공장에서 야간 근무 중이던 2002년 8월 22일 형광등 내부 배선의 스파크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공장 안에 있던 여성 근로자들이 대피하자, 건물 밖에 있던 망인은 공장에 비치된 분말형 소화기를 들고 진화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망인은 유독가스를 마시고 쓰러져 화상과 성대마비 등의 상해를 입고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2005년 2월25일 화상 후유증으로 생명을 잃고 말았다.

피고 회사의 섬유공장 건물은 조립식 판넬 지붕으로 돼 있고, 공장 내부에는 면직류의 제조과정에서 나온 분진이 누적돼 있어 화재발생의 위험이 높고, 화재시 유독가스가 배출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

이에 유족들은 “피고는 공장의 노후된 전기시설을 미리 점검하고 교체해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 한 과실로 공장에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사망했으므로 망인과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것.

그러나 피고는 “화재 당시 공장 안의 근로자들은 모두 대피했고, 공장은 화재보험에 가입돼 있었으며, 화재 발생 후 곧바로 소방관이 출동했음에도 공장 건물 밖에서 충분히 대피가 가능했던 망인이 대피하지 않고, 혼자서 무리하게 화재를 진압하려다가 사망한 것인 만큼 오로지 망인의 과실”이라고 맞섰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망인은 화재 당시 공장 건물 밖에 있어 대피할 수 있었음에도 대피하지 않고 분말용 소화기로 화재 진입을 시도한 것은 당시 야간 근무자 중 현장책임자로서 충분히 예상되고, 기대되는 행위인 만큼 망인이 대피하지 않고 화재진압을 시도했다는 사정만으로 회사의 책임이 면제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망인도 공장 안에 직물이 많아 화재시 유독가스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공장 외부로 대피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은 채 화재 진압을 시도하다 유독가스에 질식돼 공장 내부에 쓰러져 손해를 확대시킨 잘못이 있다”며 회사의 손해배상 범위를 80%로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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