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남편 살해한 아내 이례적 집행유예

대전지법 “우울증 등으로 심신미약 상태서 범행” 기사입력:2006-10-20 23:03:44
10년 동안 남편의 지속적인 폭행과 학대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아 온 아내가 남편을 살해했으나, 법원이 이례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대전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박관근 부장판사)는 18일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아내 조OO(48)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을 명했다. (2006고합102)

범죄사실에 따르면 지난 76년부터 피해자와 동거하다가 84년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는 조씨는 남편으로부터 사소한 정도의 부부싸움 수준을 넘어 가끔씩 심한 폭행이나 학대를 당해 왔다.

그런데 지난 4월6일 술에 취해 귀가한 남편은 조씨에게 욕설을 하면서 폭행하기 시작했고, 이에 조씨가 안방으로 도망가자 쫓아가 폭행하며 애완견까지 조씨에게 던져 결국 화장실로 숨었다.

그러자 남편은 “문 열어”라고 소리치며 조씨와 처가 식구들에 대해 한참 동안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쏟아내며 심지어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했다. 얼마 후 남편이 욕설을 하지 않고 집안이 조용해져 조씨는 화장실에서 나왔고, 그 때 남편은 소파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남편의 지속적인 폭행과 학대로 만성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및 충동조절 장애 등을 앓아 온 조씨는 남편을 보는 순간 분노감이나 적대감이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폭발했다.

조씨는 자신의 친정 식구들마저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소파 옆에 있던 아령으로 남편의 머리를 내리쳐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조씨의 변호인은 재판과정에서 “피고인이 당시 불안스러운 상태 하에서 극도의 공포와 흥분 등으로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이므로, 형법 제21조 제3항 등에 의해 피고인의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또한 피해자의 누나로서 피고인의 시누이인 최OO씨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피고인이 조속히 가정으로 복귀해 불쌍한 자녀들을 위해 이제부터라도 어머니 노릇을 제대로 해 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재판부에 피력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형법 제22조 제1항에 규정된 정당방위로 인정되려면 무엇보다 자기 또는 타인이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어야 하고, 긴급피난으로 인정되려면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이 있어야 한다”며 “오랜 기간 동안 남편의 폭력이나 학대에 시달려온 피고인의 특별한 심리상태를 수긍하더라도 그런 사정만으로 피고인의 법익에 대한 침해나 위난이 현존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 같이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으로 인정할 만한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이상 과잉방위나 과잉피난을 인정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살해할 의도로 때려 즉사하게 한 행위를 과잉방위나 과잉피난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특히 “고귀한 사람의 생명을 침해하는 범죄에 대해 원칙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정도의 엄벌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피고인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양형과 관련, 재판부는 “피고인이 초범이고, 10년 동안 지속적이면서도 일방적으로 피해자로부터 당해 온 가정폭력이나 학대 때문에 형성된 우울증 또는 그로 인한 충동조절 장애 등으로 말미암은 심신미약의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인정된다”고 밝혔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의 이런 정신장애 때문에 피고인에 대한 교정이나 피고인의 원만한 사회복귀를 위해서는 엄정한 형의 부과 못지 않게 피고인에 대해 꾸준하고도 적절한 정신과 치료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의 자녀들은 비극적이고도 엄청난 결과가 초래된 데에는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점을 공감하면서 어머니인 피고인의 갱생과 조속한 가정 복귀를 소망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녀 입장에서 볼 때 피고인에 대한 징역형을 즉시 집행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가족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 피고인의 재활의지 등과 더불어 적절한 입원치료 등이 병행된다면 피고인에 의해 혹시 저질러질지도 모를 재범의 위험이나 자살의 위험은 현저히 줄어들 수도 있어, 피고인을 가족들로부터 격리하기보다는 가정과 사회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배려하는 것이 피고인 본인은 물론 자녀들에게도 보탬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집행유예에 대한 고민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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