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검찰 눈치 보며 영장전담판사 지정?

‘Mr 쓴소리’ 정진경 부장판사, 법원과 검찰 신랄 비판 기사입력:2006-08-10 19:19:41
“법원이 불구속수사의 원칙을 관철하지 못하고 아직도 여론 운운하면서 현실과의 타협에 안주하는 현상은 각급 법원에서 과감하게 현재의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고 불구속수사의 원칙을 관철할 강고한 의지를 갖춘 법관보다는 검찰과의 관계에서 문제되지 않을 법관을 영장전담판사로 지정해 검찰과의 충돌을 피하고자 했던 법원행정책임자의 잘못이 크다”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법조브로커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과 관련,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정진경 부장판사가 10일 법원내부통신망에 올린 ‘영장관련유감’이라는 글에서 “판사는 여론이 아무리 법과 다른 선택을 요구한다고 해도 법에 따라 판단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며 이 같이 질타했다.

정 부장판사는 먼저 “(10일) 새벽 4시에 잠이 깨어 그 후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가급적 감정을 자제하려고 노력했으나, 법관윤리 문제는 계속 토론해 나가야겠지만 구속영장과 관련한 이번 소동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는 생각에서 작심하고 쓴소리를 낸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헌법과 형사소송법상은 불구속수사의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고, 형사소송법은 구속사유로서 범죄에 대한 소명과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를 들고 있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정 부장판사는 “범죄에 대한 소명은 소명에 불과한 것이고, 구속영장이란 피의자의 출석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에 청구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런 정도의 소명은 구속사유로서 중요성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증거인멸의 염려는 증인을 살해하거나 조직폭력배로서 증인을 협박해 위증을 강제하는 정도에 이르는 것에 국한해야 하고, 그 입증정도도 합리적인 제3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는 정도로 검찰이 구체적으로 명확한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 피의자가 부인한다고 해서 사전에 증인을 만나 증거를 조작할 우려가 있다고 추정해 구속함으로써 아예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수집해 법원에 제출할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은 헌법상 피의자에게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 부장판사는 “그렇다면 구속사유로서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도망의 염려인데 도망의 염려도 ‘실형가능성’이 있다고 도망의 염려를 추정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이라며 “피의자들이 도망을 시도한 사실이 없고, 오히려 검찰 소환에 응해 수사를 받았다면 도망의 염려는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 “판사는 여론이 법과 다른 선택을 요구해도 법에 따라 판단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정 부장판사는 그러면서 조관행 전 부장판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영장전담판사를 겨냥해 쓴소리를 냈다.

그는 “왜 구속과 관련해 실형가능성, 여론, 판사의 사회적 책임 등이 언급돼야 하는지, 왜 영장심문이 7-8시간씩 이뤄져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수사기관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유무죄와 실형가능성을 판단하게 된다면 공판중심주의를 위한 노력은 대국민 쇼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 부장판사는 특히 “입법과 행정은 그 담당자를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방법을 택하면서도 사법부의 경우 다른 구성방법을 택하고 강력하게 판사의 신분을 보장한 것은 판사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며 “판사는 여론이 아무리 법과 다른 선택을 요구해도 법에 따라 판단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검찰도 문제 삼았다. 정 부장판사는 “과거 굴지의 재벌(회장)이 검찰조사를 받다가 자살했고, 한 광역시장도 구치소 내에서 자살했는데, 이번에도 (전직 부장판사로부터) 자살하고 싶은 심정 운운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검찰조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라고 칼날을 세웠다.

정 부장판사는 또한 판사들도 꼬집었다. 그는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가장 불리하게 쓰이는 증거가 대부분 수사기관에서의 스스로의 진술이라는 기막힌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느냐”며 “이런 현상을 조장한데 대해 과연 판사들에게 책임이 없는 것이냐”고 따졌다.

그는 이어 “헌법상 진술거부권 등의 원칙에 비춰보면 피의자는 수사기관의 조사를 아예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보아야 하고, 법원은 피의자가 법정출석을 약속한다면 단순히 수사기관의 소환에 불응함을 이유로 영장을 발부해서는 안 된다”고 질타했다.

정 부장판사는 “이 같은 비정상적인 현상은 피의자가 검찰소환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 도망 및 증거인멸의 우려를 추정해 영장을 발부해주는 법원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냐”며 “이런 영장발부의 관행은 진술거부권이라는 헌법상의 권리를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 “법과 현실이 따로 노는 후진적 형사사법 운영에 근본적인 변혁 필요”

나아가 이런 원인에는 법원에게 큰 책임이 있음을 환기시켰다. 정 부장판사는 “법원에서 불구속수사의 원칙과 관련한 반성과 그 관철을 이야기한 지 벌써 10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법원이 아직도 여론운운하면서 현실과의 타협에 안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이런 현상은 각급 법원에서 과감하게 현재의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고 불구속수사의 원칙을 관철할 강고한 의지를 갖춘 사람보다는 검찰과의 관계에 있어 문제되지 않을 사람을 영장담당판사로 지정해 법원을 운영함으로써 검찰과의 충돌을 피하고자 했던 법원행정책임자의 잘못에 기인한바 크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아가 “불구속수사에는 법원칙을 지키느냐, 판사가 자의로 이를 거부하고 위법한 구속을 계속하느냐의 두 가지가 있을 뿐 절충은 없다”며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지 5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속수사의 원칙조차 정착시키지 못하고, 법원이 여론을 들어 우왕좌왕한다면 그 무원칙성으로 인해 검찰과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피할 길이 없고, 법원의 권위만 더 상처를 입게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 부장판사는 “구속사유는 판사가 임의로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인신과 관련된 것으로서 판사가 엄격히 법의 취지에 맞게 해석, 적용하여야 한다”며 “법과 현실이 따로 노는 이런 후진적인 형사사법의 운영에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어디보다도 법과 원칙이 엄격히 준수돼야 할 법원에서 외부 여론에 영합해 법원의 구성원이 구속수사를 주장하며 시위에 가담하는 사태까지 발생하는 현상들이 법원 행정책임자의 무원칙한 타협과 편의제공에 기인한 것이 아닌지 냉철하게 반성해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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