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법 A판사가 법원직원을 감금했다는 논란으로 사법부가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그야말로 사법 춘투(春鬪) 형국이다.
원만한 접점을 찾기 위해 법원행정처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법원공무원노동조합과 뚜렷한 명분을 밝히지 않으며 계속 거부하는 대법원간의 간극이 급기야 사법사상 처음으로 대법원 청사에서 대법원장 항의 규탄대회가 열리고, 삭발 투쟁까지 단행되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재 결과 대법원도 사태수습을 위해 나름대로 A판사를 종용(慫慂)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의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그 동안 A판사에게 유연하게 처리해 줄 것을 여러 루트를 통해 주문했고, 심지어 대법관까지 판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기도 했다는 것.
◈ 법원노조 삭발 투쟁…대법원, 청사 출입문 굳게 닫으며 대화 거부
1일 오후 4시 서울중앙지법 법원노조 사무실에는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법원노조가 법원행정처장에 대한 면담요구가 계속 거부당하자 지난달 27일 대법원장 규탄대회에 이어 삭발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국법원 각 지부장과 지역본부장들을 소집해 긴급 회의를 가진 법원노조 곽승주 위원장은 “대법원의 공식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오늘도 법원행정처장에게 면담요청을 해 놨다. 위원장이 결연한 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인 만큼 사법민주화를 위해 삭발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투쟁결의를 다졌다.
이들은 회의가 끝난 뒤 삭발식 거행을 위해 4시 35분 서울법원종합청사 중앙로비로 향했다. 삭발식 정보를 입수한 것인지 그 자리에는 서울법원청사 경비책임자인 비상계획관과 경비대원 20여명이 나와 있었고, 곽승주 위원장에게 다른 장소를 이동해 줄 것을 요청하다가 법원노조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노조는 물러서지 않고 곽승주 위원장과 이성철 사무총장의 삭발식을 거행했다. 이를 저지하려는 법원 경비관리대와 몇 차례 몸싸움이 벌어졌고, 경비관리대는 중앙방송사의 카메라 촬영까지 막으려다 “취재를 방해하는 것이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삭발식 거행 후 법원노조는 ‘언론탄압과 노조탄압책동 분쇄를 위한 투쟁 삭발식’이 적힌 플래카드는 앞세우고 대법원으로 향하면서 “사법개혁 한다는데 대화거부 웬 말이냐”를 연신 외치며 행진했다.
법원노조가 대법원 청사 정문에 도착한 시각은 5시 10분. 하지만 면담요청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문은 굳게 닫혀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법원행정처 직원 30여명은 닫힌 문 안쪽에서 밖을 내다 볼 뿐이었다.
대법원은 그러면서도 청사 안에서 캠코더로 법원노조의 모습을 촬영했고, 또한 법원노조 대변인이 방송사와 인터뷰를 갖자 내용을 감지하려는 듯 밖으로 나온 경비대원이 방송사 인터뷰 모습을 캠코더에 담는 등 극도로 경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대열 서울가정법원지부장은 “자유·정의·평등을 자랑스럽게 대리석에 새겨놓은 대법원이 대화를 하자고 찾아온 법원가족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닫고 있다”며 “우리가 불량배냐”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곽승주 위원장도 “법원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으려하지 않고 문을 꼭 닫으면서 직원의 인권탄압을 일삼는 대법원장이 어찌 국민을 섬기는 법원을 만들 수 있겠느냐”며 “이래서는 법원이 최후의 인권 보루가 될 수 없으니 대법원장은 각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영렬 경기·강원본부장은 “행정관리실장의 임무는 법원직원들의 목소리를 법원행정처에 전달하는 것인데 법원행정처장과의 면담을 성사시키지 못하는 행정관리실장의 모습을 보면 직무유기와 같다”고 꼬집었다.
박태희 영남본부장은 “90년대 이후 사건은 100% 이상 증가했고, 이에 판사는 120% 증원하면서도 일반직원은 40% 밖에 증원하지 않아 일반직원의 업무량은 1인당 1.5배로 증가해 법원은 사실상 구조조정이 된 상태임에도 법원은 더 열심히 일하라고만 하지 직원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한편 법원노조와 법원행정처장과의 면담을 위해 행정관리실장과의 전화연락이 수 차례 오고가던 중 일단 대표자 몇 명만 행정관리실장과 만나기로 협의되자, 교섭단체장 5명만 남고 5시 43분 법원노조사무실로 향했다.
그러자 6시가 넘어 대법원 문이 열렸고, 대법원 경비책임자인 비상계획관, 인력운영담당관 등이 차례로 나와 자리를 지키던 노조대표들과 함께 대법원으로 들어갔으며, 사무실로 향한 법원노조 집행부는 8시가 넘도록 후속대책을 논의했다.
◈ 대법관까지 나서 해당 판사에게 원만한 해결 주문
이날 기자는 대법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법원노조와 만난 행정관리실장을 만나려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대법원도 긴급 회의를 소집해 만날 수 없었다. 더욱이 대법원 언론창구인 공보관조차도 민감한 사안을 이유로 입장표명을 자제하는 상황이어서 양측의 입장을 듣고 전달해야 하는 기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커져갔다.
이에 법원노조가 요구하는 면담대상인 법원행정처장의 입장을 들으려 시도했으나 “민감한 사안이고, 아직 정리된 입장이 없다”는 이유로 이 역시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대법원의 정통한 소식통을 만나 현재 대법원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법원의 정통한 소식통은 이날 저녁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법원가족간에 이런 사태로 번져간 것에 대해 대법원도 참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으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법수뇌부들도 상당히 고심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기자가 “초기에 사과만 했으면 사태가 커질 일이 아니었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원만한 해결을 위해 그 동안 A판사에게 유연하게 처리해 줄 것을 여러 루트를 통해 주문했으나 쉽지 않았고, 심지어 대법관까지 판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기도 한 것으로 안다”며 사태 악화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또한 “사태가 악화된 것은 대법원이 법원내부통신망을 닫아버려 기름을 부은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내부통신망을 막아 버린 것은 정말 잘못이다. 언제까지 닫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지시가 있었으니 내일은 글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는 행정관리실장을 만난 노조대표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었다.
법원공무원들의 의사소통 공간인 법원내부통신망을 닫아버리자 답답한 것은 대법원도 마찬가지. 그는 “대법원도 법원노조 홈페이지나 언론보도가 나간 이후에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있다”며 “무엇보다 이번 일로 인해 사법부 이미지가 크게 훼손된 것이 아쉽다”고 안타까워했다.
기자는 또 “대법원 누구도 입장 밝히기를 꺼리니 답답하다”고 하자, 그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사를 써야하는 기자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너무 민감한 사안이어서 현재로선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이해해 달라. 오늘 오후 긴급회의를 가졌으니 조만간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대법원이 곧 입장표명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도 역시 기자와의 대화 중에 민감한 사안임을 수 차례 강조하며 보도하지 말아 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 하지만 기자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또한 대화내용 중 보도될 경우 우려되는 극도로 민감한 부분은 자제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보도하기로 했다.
◈ 왜 이렇게 사퇴가 악화되고 커졌나?
법원노조는 서울남부지법의 사태를 판사의 ‘불법감금’으로 규정하고 ‘인권유린’이라고 주장하면서, A판사의 공식사과와 대법원 차원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했다. 이에 법원행정처도 신속하게 진상조사를 벌여 A판사를 전보조치 했으나 법원노조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
대법원이 지난달 27일 공식사과 없이 A판사에 대한 전보조치를 발표하자, 법원노조는 즉각 대법원 청사 로비에서 사법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 규탄대회를 가졌다. 물론 이날 법원노조를 저지하려는 대법원 경비관리대와의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
문제가 더욱 악화되기 시작한 것은 대법원이 법원노조의 면담요구에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계속해서 단호하게 면담자체를 거부해 자극한 것.
이런 사실들이 법원내부통신망을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가자 법원공무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대법원을 비난하는 글들을 봇물처럼 쏟아내기 시작했고, 법원노조 홈페이지에도 평소 방문자의 2∼3배가 넘는 사람들이 방문하며 수많은 글을 올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원공무원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진상조사결과를 발표한데 이어 지난달 27일부터는 조직적으로 법원내부통신망을 원천 봉쇄하기 시작해 법원공무원들의 분노하기 만든 것.
물론 그 이전에도 대법원이 통신망에 올라 온 글들을 삭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으나, 27일부터는 자유게시판 글을 무단 삭제하는 수준을 넘어 글 쓰기 기능 자체를 막아 버렸다. 이에 법원공무원들도 이미 올려져 있던 글을 수정해 투쟁 속보와 비난 글을 올리자 이번에는 그 글도 삭제하고 수정 기능도 마비시켰다.
대법원은 더 나아가 메일기능도 통제했다. 법원노조에 따르면 노조위원장이 이 같은 부당성을 알리는 메일을 노조원들에게 27일 오후 6시 30경 발송하고 28일 오전에 확인해 보니 한번 발송하는데 200명까지 가능했던 것을 10명만 발송되도록 제한했다.
더욱 화가 난 법원공무원들은 급기야 경조사란에 “코트넷 사망”이라고 올리자 법원공무원들의 경조사를 올릴 수 있는 이 공간마저도 글쓰기 기능을 28일 삭제했다. 뿐만 아니라 법원제안 코너도 마찬가지.
이에 격분한 법원노조는 즉각 보도자료를 통해 “인권의 최후 보루인 법원에서 언론 탄압의 망령을 되살리는 법원행정처는 즉각 중단하라!”며 맹비난 했으며, 이렇게 대법원과의 간극은 더 멀어져만 갔다.
어쨌든 이 같은 법원가족간의 갈등은 이를 지켜보는 국민에게 사법불신이라는 우려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출혈이 있기 전에 대법원과 법원노조가 어떤 해법으로 원만히 풀어나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삭발 투쟁 “인권 최후 보루인 법원에서 표현의 자유 심각하게 훼손”
한편 법원노조는 1일 삭발식에서 낭독한 투쟁결의문을 통해 “단순한 판사의 직원 핍박에서 시작된 투쟁이 법원가족간의 걷잡을 수 없는 불신으로 번지고 있고, 심지어 인권의 최후 보루인 법원에서 헌법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훼손하는 행위가 발생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노조는 “내부적 민주화 없이 국민을 섬기는 법원이라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며, 이런 법원에서 내린 판결을 어떻게 국민이 신뢰하겠는가 ”라고 일침을 가하면서 “이번 사태에서 불거진 국민의 법원에 대한 불신이 무엇인지를 통감하며, 앞으로 진정 국민을 위한 법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법원노조는 앞장 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울러 결의를 통해 ▲법원내부 통신망 폐쇄를 중단하고, 법원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책임자를 처벌하고, ▲서울남부지법 사태에 대해 법원직원들이 수긍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라고 압박했다.
법원노조 분개 삭발…대법관도 A판사 종용
판사 ‘감금’ 논란 사건, 왜 이렇게 커졌나 기사입력:2006-05-02 01: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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