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 심준보 기자] 부실금융기관 관련자들의 은닉자산을 추적해야 할 예금보험공사의 가상자산 조사가 조사 대상자에게 사전 통지되는 일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과정에서 예금보험공사가 국회에 제출한 최초 보고에서 관련 사실을 누락한 정황까지 확인되면서 김성식 예금보험공사 사장의 관리·감독 책임론이 불거질 전망이다.
김성식 사장은 지난 1월 예금보험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금융위원회는 당시 김 사장을 부실금융기관 지정과 파산절차 등에 대한 법률 경험과 전문지식을 갖춘 적임자로 평가했다. 김 사장 역시 취임 당시 선제적 위기 대응과 금융안전망 강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김성식 사장 취임 이후 부실관련자의 은닉 가상자산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조사 대상자에게 자료 조회 사실이 먼저 알려지는 일이 발생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박민규 의원실에 따르면 예보의 부실관련자 가상자산 조사 대상 8,405명 가운데 46명에게 예보의 가상자산 정보 조회 사실이 가상자산거래소를 통해 사전 통지됐다.
문제는 해당 조사가 애초부터 '은닉자산 환수'를 목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예보는 2024년 부실관련자의 은닉자산 조사와 환수를 강화하기 위해 가상자산사업자에게 관련 자료를 요구할 수 있도록 예금자보호법을 개정했다.
예보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예보는 부실관련자 12,790명을 대상으로 가상자산사업자에게 잔고내역 등을 요구했다. 이 가운데 925명의 가상자산 보유 사실을 확인했고 약 32억5000만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적발했다. 이 중 3억1000만원은 회수됐다.
가상자산이 은닉자산 추적의 새로운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상황에서 조사 사실이 당사자에게 먼저 알려진 것이다.
사전통지를 둘러싼 법적 논란도 이미 예고돼 있었다.
지난 2월 신용정보법 시행령 개정으로 가상자산 거래정보가 개인신용정보에 포함되면서 가상자산사업자가 예보에 관련 정보를 제공할 경우 정보주체에게 그 사실을 통지해야 하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현행 예금자보호법상 금융거래정보는 금융실명법에 따라 일정 기간 정보 제공사실 통지를 유예할 수 있지만 가상자산 정보에 대해서는 별도의 명확한 유예 규정이나 예외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예보는 거래소 측에 자료제공 사실이 사전에 알려질 경우 조사 대상자가 가상자산을 다른 지갑이나 거래소로 옮기는 등 추가 은닉에 나설 수 있다며 사전통지 유예를 요구했다.
반면 거래소들은 신용정보법상 정보 제공사실을 당사자에게 통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통지하지 않을 경우 거래소가 법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예보는 금융위원회에 정식 법령해석을 요청하기보다 국민신문고 답변을 근거로 거래소를 설득했다. 예보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예금자보호법 제21조의3 제1항에 따른 자료제공 요구는 개인정보보호법을 따라서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아 거래소에 전달했다.
하지만 거래소들은 국민신문고 답변만으로 신용정보법상 통지의무가 면제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금융위의 공식적인 법령해석을 요구했다.
결국 법적 공백을 둘러싼 논란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제 사전통지가 발생했다.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A거래소는 예보에 관련 자료를 제공하기 하루 전인 6월 1일 부실관련자 46명에게 가상자산 정보 제공 사실을 사전 통지했다.
A거래소는 사전통지 방침을 예보에 이메일로 전달했지만 별도의 답변을 받지 못했고, 이를 예보가 사전통지에 동의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의원실에 설명했다.
예보의 설명은 달랐다.
예보는 사전통지를 할 경우 은닉자산 추적 업무를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을 거래소에 분명히 알렸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더해 국회 보고 과정에서도 논란이 커졌다.
예보는 의원실 최초 보고에서 A거래소로부터 자료를 제공받은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A거래소가 조사 대상자에게 사전통지를 했는지에 대해서도 예보 차원에서 알 수 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하지만 의원실 확인 결과 A거래소는 6월 9일 이미 예보에 사전통지 사실을 알린 것으로 나타났다.
예보는 이에 대해 A거래소가 법적 책임 문제 때문에 가상자산 거래내역을 제출하지 않은 것처럼 처리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결과적으로 김성식 사장 취임 이후 예보가 추진한 은닉자산 추적 과정에서 조사 대상자 46명에게 조사 사실이 먼저 전달됐고, 이후 국회 보고 과정에서는 해당 거래소와 관련한 사실관계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셈이다.
특히 김성식 사장이 취임 당시 강조했던 '선제적 위기 대응'과 '정보 공유를 통한 상시 감시체계 고도화'와도 배치되는 대목이다.
김 사장은 취임사에서 금융안전망의 핵심기관으로서 선제적인 위기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금융시장과 금융회사에 대한 상시 감시체계를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부실금융기관 관련자의 은닉자산을 추적하는 핵심 업무에서 조사 정보가 대상자에게 먼저 전달되고, 국회 보고 과정에서도 관련 사실이 누락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예보 내부의 정보관리와 보고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놓고 의문이 제기된다.
더 큰 문제는 책임 소재다.
박민규 의원실은 금융위원회에 입법 공백 상황에서 부실관련자에게 가상자산 거래정보 제공 사실이 사전 통지되고 이로 인해 재산 은닉이 발생할 경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질의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예보에 답변을 넘겼다.
법적 책임을 둘러싼 예보와 거래소 간 갈등이 이어지는 동안 정작 사전통지 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고, 그 결과 실제 조사 대상자에게 정보가 전달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거래소의 법적 판단 착오'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예보는 은닉자산을 추적하고 환수할 법적 권한을 부여받은 기관이다. 특히 가상자산은 기존 금융자산보다 이전과 은닉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에서 조사정보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영역이다.
그런데 조사정보가 사전에 전달됐다면 해당 자산이 다른 거래소나 개인지갑으로 이동했는지, 실제 환수 가능 자산이 줄어들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더욱이 최초 국회 보고에서 A거래소와 관련된 사실이 누락됐다면 당시 예보 내부에서 누가 해당 내용을 보고받았고, 어떤 판단에 따라 국회 보고자료가 작성됐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김성식 사장이 이 같은 개별 업무를 직접 지시했거나 보고 누락을 지시했다는 사실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김 사장 취임 이후다. 예보의 기관장으로서 은닉자산 조사체계와 정보관리, 국회 보고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는지에 대한 최종적인 관리·감독 책임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민규 의원은 "은닉자산을 찾기 위한 조사인데 정작 조사 대상자에게 자신의 가상자산을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알려졌다"며 "만약 보유 규모가 컸다면 수억, 수십억원 상당의 은닉자산을 놓칠 수 있었던 초대형 사고"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초 의원실 보고에서는 A거래소의 자료제공 및 사전통지 관련 사실까지 누락했고 금융위원회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이번 국정감사에서 은닉자산조사 사전유출 경위와 책임 소재, 재발방지대책을 철저히 따지겠다"고 밝혔다.
심준보 로이슈(lawissue) 기자 xzvc@lawissue.co.kr
예보, 은닉 가상자산 찾는다더니…조사 대상에 사전 유출에 김성식 책임론 부상
기사입력:2026-09-14 12: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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