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분양계약해지, 계약금만 포기하면 끝날까

기사입력:2026-10-08 11:18:08
백다은 법무법인(유) 엘케이파트너스 변호사. 사진=법무법인(유) 엘케이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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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슈 전여송 기자] “계약금은 포기할테니 계약만 끝내고 싶다.”

분양계약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진 수분양자라면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다. 잔금 마련이 어려워지거나 예상했던 임대수익을 기대하기 힘들 때, 이미 낸 계약금을 손실로 감수하더라도 더 큰 부담을 피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계약금을 포기하겠다는 의사와 분양계약이 법적으로 종료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분양계약을 해지 또는 해제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지, 계약이 현재 어느 단계까지 이행되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민법 제565조 제1항은 계약금을 주고받은 매매에서 별도의 약정이 없는 한, 당사자 일방이 이행에 착수하기 전까지 매수인은 계약금을 포기하고 매도인은 그 두 배를 반환하는 방법으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해약금에 의한 해제’다.

문제는 분양계약에서 언제 ‘이행에 착수한 것’으로 볼 것 인지인데,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통상 중도금 지급이 그 기준이 된다. 다시 말해 이미 중도금이 납부된 경우라면 단순히 계약금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만으로 계약을 끝내기는 어려워진다. 특히 최근 분양현장에서는 중도금이 수분양자의 자기자금이 아니라 집단대출을 통해 납부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계약금만 내면 입주 시까지 추가 부담이 없다”라는 분양계약 광고는 계약 체결 당시에는 초기 부담을 낮추는 매력적인 조건처럼 보이지만, 집단대출이 실행되어 중도금이 지급되고 나면 수분양자가 자신의 돈을 직접 납부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계약의 이행에 착수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결국, 분양계약 체결을 쉽게 만드는 구조가, 반대로 계약을 끝내려 할 때는 해제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계약서에 별도로 약정해제권을 정하고 있다면 그 내용도 함께 살펴야 한다. 실제 분양계약서에는 수분양자가 자신의 부득이한 사유로 계약의 해지 또는 해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중도금 1회분이라도 납부한 이후에는 시행사가 이를 인정하는 경우에 한하여 계약을 종료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결국, 중도금 납부 전에는 일정한 요건 아래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관계에서 벗어날 여지가 있지만, 중도금이 납부된 이후에는 수분양자의 일방적인 의사만으로 계약의 구속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리고 실제 시행사가 해지 또는 해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수분양자는 계속해서 중도금이나 잔금 지급의무, 연체료 부담 등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설령 시행사가 합의해제에 응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계약금만 포기하는 것으로 정리되는 것도 아니다. 실무에서는 이미 지급한 계약금을 귀속시키는 데 더하여 별도의 위약금이나 손해배상금, 연체료 또는 금융비용 등을 추가로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계약금은 포기할 테니 계약만 끝내 달라’는 생각과 실제 계약 종료에 필요한 비용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생길 수 있다. 결국, 중도금이 지급된 분양계약에서는 계약을 끝낼 수 있는지뿐 아니라, 끝낼 수 있다면 어떤 금액을 부담해야 하는지까지 함께 따져보아야 한다.

또 하나 살펴볼 문제는 계약금의 범위다. 분양계약에서는 계약금을 여러 차례 나누어 납부하기로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때 수분양자는 자신이 실제로 납부한 금액만 포기하면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5. 4. 23. 선고 2014다231378 판결에서, 약정한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단계에서는 원칙적으로 민법 제565조에 따른 해약금 해제를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계약금 계약은 실제 금전의 교부를 전제로 성립하므로, 약정한 계약금 전액이 지급되지 않았다면 계약금 계약 자체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더 나아가 대법원은 설령 일부 지급된 상태에서 해약금 해제를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기준이 되는 금액은 실제 지급액이 아닌 당초 약정한 계약금 전액이라고 보고 있어, 계약금 일부만 납부된 경우에는 우선 해제 자체가 가능한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하고, 해제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실제 납부액이 아닌 약정한 계약금 전액이 그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관련하여, 최근에는 계약금 지원금이나 페이백이 결합되면서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있다. 통상 사업자나 분양대행사가 계약금 일부를 대신 납부하거나 수분양자가 먼저 납부한 뒤 일정 금액을 돌려받는 방식이 활용되는데, 이는 실질적으로 분양대금을 할인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내어 수분양자에게 초기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게 하나, 결국 문제는 계약서상 분양대금이나 계약금 총액 자체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분양계약이 해제되는 경우 받은 지원금이나 페이백을 다시 반환하도록 정하고 있어, 수분양자가 예상한 것보다 부담이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분양계약을 해제할 때는 “내가 실제로 얼마를 냈는가”만 볼 것이 아니라, 계약서상 계약금 총액과 실제 자금의 흐름, 지원금이나 페이백의 지급 방식과 반환 조건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한편, 계약금을 포기하겠다고 통보한 뒤 중도금 이자나 잔금 납부를 곧바로 중단하는 대응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분양계약의 효력을 다투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대출금이나 이자의 지급의무가 당연히 정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수분양자는 금융기관을 상대로 대출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하면서 연체정보 등록의 유예 등을 통해 신용상 불이익을 줄이고자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송이 대출이자나 연체 부담을 면할 수 있는 일종의 ‘안전장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분양계약과 금융기관과의 대출계약은 서로 별개의 법률관계이므로, 분양계약이 취소되거나 해제되었다고 하여 대출채무까지 당연히 소멸하는 것은 아니며, 최종적으로 대출채무의 부존재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 그동안 미지급한 원리금과 지연손해금은 물론 소송비용까지 추가로 부담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한다.

다만, 계약금 포기에 의한 해제가 어렵다고 해서 계약에서 벗어날 다른 방법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입주 지연이나 계약상 의무 위반이 있다면 약정해제권이나 법정해제권의 요건을 별도로 검토할 수 있고, 그 요건이 충족된다면 중도금이 이미 지급된 이후에도 해제가 가능할 수 있다.

특히 계약 체결 당시 사업자나 분양대행사 측이 일정 시점 이후 전매가 가능하다거나 분양대금의 일정 비율까지 대출할 수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보장하였고, 녹취, 약정서 등 구체적인 자료를 토대로 입증할 수 있다면, 별도의 취소 또는 해제 사유가 인정될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명확한 해제사유가 없거나 일방적인 해제권 행사에 다툼이 예상된다면 현실적으로는 합의해제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합의해제는 계약금 포기 의사를 일방적으로 밝힌다고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결국 어느 범위에서 손실을 감수하고 계약관계를 정리할 것인지에 관한 협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계약을 해지 또는 해제해 달라”고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계약서와 실제 납부내역, 계약 체결 당시의 설명, 이후의 이행 경과를 토대로 서로가 부담할 법적·경제적 위험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소송이 제기된 이후에도 반드시 판결로만 결론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법원의 조정절차를 통해 계약금과 위약금, 연체료, 옵션비 등 여러 쟁점을 한꺼번에 정리하는 것이 당사자 모두에게 더욱 현실적인 해결책이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중도금 대출이 실행된 사건에서는 ‘분양계약을 종료한다’라는 합의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채무를 누가 부담할 것인지, 분양대금 반환금이 금융기관에 직접 지급되는지, 시행사가 대출금을 대신 상환한 경우 수분양자에 대한 구상권이 남는지까지 함께 정리해야 한다. 이러한 권리관계를 빠뜨리면 시행사와의 분양계약 관계는 정리되었더라도 금융기관이나 신탁회사와의 새로운 분쟁이 남을 수 있다.

당사자 쌍방이 충분한 형식을 갖추어 체결한 계약의 구속력을 사후적으로 깨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실제로 거액의 분양계약을 체결한 뒤 “그때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 “귀신에 씐 것처럼 계약했다”라고 뒤늦게 후회하는 수분양자들을 적지 않게 본다.

그러나 이미 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자책하거나 문제를 외면한 채 시간만 보내는 것 역시 바람직한 해결책은 아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현재 계약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해제나 취소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지, 협의를 통해 정리할 여지가 있는지를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계약 문제는 한 번의 선택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 단계에서 어떤 대응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미 체결한 계약을 되돌릴 수 있을지 고민되는 순간일수록 막연히 포기하거나 서두르기보다, 가능한 선택지를 하나씩 확인하며 그 시점에서 최선의 대응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전여송 로이슈(lawissue) 기자 arrive71@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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