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와 도움을 받아야 할 청소년이 거꾸로 부모에게 사건을 설명하고 어려운 법률 용어를 풀어주며 때로는 통역까지 맡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서다.
이연제·조영오 경기대 범죄교정심리학과 연구팀은 학술지 <교정연구>에 발표한 논문 '소년사법절차에서 이주배경 가정의 언어적 장벽 및 개선 방안'에서 부모와 자녀의 뒤바뀐 역할을 '언어 역량의 역전'이라는 관점으로 분석했다. 부모보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익숙한 자녀가 사법 위기 상황에서 부모를 대신하는 구조가 소년의 방어권(수사와 재판에서 스스로를 지킬 권리)과 부모의 보호 기능을 한꺼번에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진단이다.
지금까지 이주배경 청소년 문제는 주로 학교 적응과 진로, 정서, 경제적 어려움을 중심으로 논의돼 왔다. 소년사법 절차에서는 부모가 사건을 이해하고 자녀에게 법적·정서적 도움을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부모가 언어나 법률 지식의 한계로 보호자 역할을 하지 못하면 부담은 다시 자녀에게 돌아갈 수 있다.
![이연제·조영오 경기대 범죄교정심리학과 연구팀([발행연도]) 연구에 따르면, 사법 실무자의 86.1%가 이주배경 청소년의 부모와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답했고 이주배경 보호자의 68.8%는 사법절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한국어에 익숙한 자녀가 부모 대신 통역과 설명을 떠맡으면서 소년의 방어권과 부모의 보호 기능이 함께 약해진다고 진단하며, 사법 조력 코디네이터 도입과 다국어 시청각 안내, 판사·수사관용 대응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본 이미지는 기사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것입니다.)](https://cli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10051242470781907b682bb492175213125248.jpg&nmt=12)
이연제·조영오 경기대 범죄교정심리학과 연구팀([발행연도]) 연구에 따르면, 사법 실무자의 86.1%가 이주배경 청소년의 부모와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답했고 이주배경 보호자의 68.8%는 사법절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한국어에 익숙한 자녀가 부모 대신 통역과 설명을 떠맡으면서 소년의 방어권과 부모의 보호 기능이 함께 약해진다고 진단하며, 사법 조력 코디네이터 도입과 다국어 시청각 안내, 판사·수사관용 대응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본 이미지는 기사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것입니다.)
이미지 확대보기■ 한국말 익숙한 아이와 서툰 부모, 사법 절차에서 뒤집히는 가족 역할
이주배경 가정에서는 자녀가 부모보다 빠르게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이들은 학교와 또래 관계 속에서 한국어와 문화를 익힌다. 부모는 생업에 매이고 사회관계도 좁아 언어와 문화 적응이 상대적으로 더딜 수 있다.
논문이 인용한 사법 실무자 조사에서도 부모와 자녀의 격차가 드러났다. 이주배경 청소년과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답한 비율은 70.3%였다. 부모와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응답은 86.1%로 15.8%포인트 높았다.
문제는 부모와 자녀의 언어 격차가 경찰서와 법원 같은 사법 공간에서 더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연제·조영오 연구팀은 부모보다 언어와 문화에 익숙한 자녀가 행정·법률 절차를 설명하거나 통역을 대신하는 현상을 '도구적 부모화(Instrumental Parentification)'와 연결한다. 도구적 부모화는 자녀가 통역이나 서류 처리처럼 어른이 해야 할 실무를 대신 떠맡는 현상을 가리킨다. 보호받아야 할 아이가 거꾸로 부모 노릇을 하는 셈이다.
부모가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자녀를 정서적으로 지지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돕기도 어려워진다. 두 연구자는 부모와 자녀의 역할 역전이 부모의 권위와 신뢰를 떨어뜨리고 가족 내 갈등을 키우며 장기적으로는 청소년 비행을 억제해야 할 가정의 보호 기능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 한국말 한다고 법을 아는 건 아닌 현실, '기소' '보호처분' 앞에서 막히는 부모
연구팀이 특히 강조하는 대목은 '한국어를 할 수 있다'와 '사법절차를 이해할 수 있다'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일상 대화가 가능하더라도 '기소', '진술거부권', '소년원 송치', '보호처분' 같은 용어가 무엇을 뜻하고 앞으로 어떤 절차가 이어지는지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능력이다. 학계는 사법절차를 이해하는 능력을 '법률 문해력(Legal Literacy)'이라고 부른다. 법률 문서를 읽고 쓰는 수준을 넘어 사법체계 안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권리가 있고 권리를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능력이다.
논문이 인용한 실무자 조사에서는 이주배경 보호자의 68.8%가 사법절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국내 연구에서는 아동·청소년도 '경찰', '감옥' 같은 일상 단어는 잘 알았지만 '기소', '검사', '진술조력인'처럼 추상적이고 절차와 관련된 법률 용어의 이해도는 크게 낮았다.
한국에서 자란 아동에게도 어려운 법률 용어라면 한국어와 한국 사법제도가 낯선 이주배경 부모에게는 훨씬 높은 장벽이 될 수 있다고 논문은 지적한다.
■ 통역인 있어도 생기는 빈틈, '소년원 송치'가 '캠프 참가'로 둔갑
통역인을 배치한다고 문제가 모두 풀리는 것도 아니다. 논문이 인용한 현장 실무자 조사에서는 사법기관 안내문이 한국어로만 제공돼 이주배경 가정이 직접 통역을 구해야 했던 사례가 보고됐다.
통역의 정확성도 문제였다. 일부 통역인은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고 '소년원 송치'나 '보호시설 입소' 같은 처분을 '캠프 참가' 정도로 모호하게 전달하기도 했다. 통역은 제공됐지만 당사자는 자신과 자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셈이다.
수사 초기부터 부모가 사실상 빠지는 경우도 있다.
논문에 인용된 실무자 증언에 따르면, 이주배경 청소년은 한국어가 서툰 부모에게 비행 사실을 알리기를 주저하거나 부모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호자 없이 홀로 조사를 받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부모 역시 체류 자격에 불이익이 생기거나 강제퇴거(추방)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 수 있다. 실무자의 약 60%는 이주배경 청소년과 보호자가 비행·범죄로 체류 자격을 잃거나 강제퇴거될 가능성을 두려워한다고 응답했다.
경기대 연구팀은 이주배경 부모의 소극적인 태도를 '자녀에게 관심이 없는 부모'나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 부모의 침묵, '비협조'로 읽히면 더 무거운 처분 우려
언어 문제는 의사소통이 불편한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소년사법에서는 부모의 보호 능력과 가정환경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부모가 자녀를 감독하고 지도할 수 있는지가 처분과 교정 계획을 정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부모가 한국어와 법률 절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소극적으로 비치면 수사기관과 법원이 부모의 태도를 양육 의지 부족이나 비협조로 오해할 가능성이 생긴다.
논문은 부모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자녀가 통역과 의사결정을 대신하면 가정 내 역할이 뒤집히고 부모의 보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연구팀은 나아가 부모의 '무지'와 위축된 태도가 '비협조'나 '양육 방임'으로 오인돼 소년원 송치 같은 더 엄중한 처분으로 이어질 개연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다만 이연제·조영오 연구팀이 실제 사건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언어 장벽 때문에 더 무거운 처분을 받는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더 무거운 처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은 연구팀이 기존 문헌과 제도 분석을 토대로 제기한 구조적 위험이다.
■ 영국 법관 지침, "당신 말로 다시 설명해보세요" 확인 권고
해외에서는 통역인 배치에 그치지 않고 당사자가 실제로 절차를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발전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 사법부의 '평등 대우에 관한 법관 지침서(Equal Treatment Bench Book·ETBB)'다.
영국 지침서는 통역인이 있다고 해서 법관의 책임이 끝난다고 보지 않는다. 법관은 피고인과 보호자가 혐의와 재판 절차, 법정에서 오가는 말을 실제로 이해했는지 능동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필요하면 전문 중개인(intermediary)이 개입한다. 전문 중개인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통역인과 다르다. 당사자가 재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을 표현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 과정 전반을 조율한다.
이해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도 다르다. 영국 지침서는 법관이 내용을 설명한 뒤 "자신의 말로 다시 설명해보라(Explain back in their own words)"고 요청하는 방법을 권고한다. "알아들었습니까"라고 묻고 "네"라는 대답을 받는 데서 끝내지 않고 당사자가 실제로 무엇을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미국에서는 '부모 옹호자(Parent Advocates)', 캐나다에서는 '문화 중개인(Cultural Brokers)'이 활용된다. 뉴질랜드의 랑가타히 법원(마오리 공동체 회관 '마라에'에서 열리는 소년법정)은 마오리 원로가 재판 과정에 참여해 청소년과 가족의 문화적 유대와 공동체 소속감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공통점은 하나다. 통역이 아니라 '참여'를 돕는다는 것이다.
■ 통역 한 명 배치로는 부족, 연구팀이 내놓은 세 가지 개선책
한국에도 통역을 지원할 법적 근거는 이미 있다.
'법원조직법'과 '형사소송법', '소년법' 등에 통역 관련 규정이 있고 경찰과 검찰에도 별도의 통역 규정이 있다. 그러나 연구팀은 현행 제도가 여전히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고 지적한다.
일상적인 한국어는 할 수 있지만 법률 문해력이 낮은 부모는 지원 대상에서 빠질 수 있고 통역의 전문성과 품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기준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소년사법은 부모에게 자녀를 지도하고 보호할 책임을 요구한다. 정작 부모가 책임을 다하는 데 필요한 언어·법률 지원은 부족하다고 두 연구자는 본다.
연구팀은 세 가지 개선책을 제시한다.
첫째는 '사법 조력 코디네이터'다. 외국어 통역만 맡는 인력이 아니라 형사·소년사법과 아동·청소년 심리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이 초기 수사 단계부터 부모와 자녀를 돕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코디네이터는 법률 용어를 모국어로 설명하고 절차를 안내하며 조서 작성과 부모·자녀 간 의사소통까지 지원한다.
둘째는 어려운 글 중심의 안내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강제퇴거 여부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진술거부권처럼 당사자가 꼭 알아야 할 정보를 그림과 QR코드, 다국어 음성이나 동영상으로 제공하자고 제안한다.
셋째는 판사와 수사관을 위한 '이주배경 사건 대응 가이드라인'이다. 부모가 침묵한다고 곧바로 비협조적이라고 판단하지 말고 부모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먼저 확인하자는 취지다. 쉬운 한국어 사용과 이해 여부 확인 질문, 문화적 배경에 따른 행동 차이를 해석하는 기준도 가이드라인에 담아야 한다고 논문은 제안한다.
소년사법의 목적은 청소년의 재비행을 막고 사회 복귀를 돕는 데 있다. 부모에게 자녀를 보호하고 지도하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부모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제도 자체가 모순에 빠진다.
이연제·조영오 연구팀이 던지는 질문도 결국 같은 지점에 닿는다. 통역인이 있었는지가 아니라 부모가 정말 이해했는가. 그리고 부모가 이해하지 못한 대가를 자녀가 대신 치르고 있지는 않은가.
▶연구논문
이연제·조영오. (2026). 소년사법절차에서 이주배경 가정의 언어적 장벽 및 개선 방안. 교정연구, 36(2)·289-215.
김지연(Jee Yearn Kim) Ph.D.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형사정책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법심리연구소 박사후 연구원으로, 생성형 AI 기술 역기능 및 사용자 위험 요인 대응 정책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 범죄자 위험 평가, 교정 개입 원칙, 형사사법 실무자 조직행동, 스토킹 범죄자 개입 등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



![이연제·조영오 경기대 범죄교정심리학과 연구팀([발행연도]) 연구에 따르면, 사법 실무자의 86.1%가 이주배경 청소년의 부모와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답했고 이주배경 보호자의 68.8%는 사법절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한국어에 익숙한 자녀가 부모 대신 통역과 설명을 떠맡으면서 소년의 방어권과 부모의 보호 기능이 함께 약해진다고 진단하며, 사법 조력 코디네이터 도입과 다국어 시청각 안내, 판사·수사관용 대응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본 이미지는 기사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것입니다.)](https://cli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595&simg=202610051242470781907b682bb492175213125248.jpg&nmt=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