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베팅과 가상 게임, 슬롯머신에 빠져 100만 달러(약 13억 원) 이상을 잃은 노아 바인버그(Noah Vineberg)는 한때 자살만이 가족을 지키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믿었다. 열 살에 도박을 시작한 바인버그는 세 차례 재발 끝에 회복에 성공했다. 바인버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빚은 결국 자신의 선택이 남긴 결과를 모두 마주하게 만든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까지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바인버그의 경험은 극단적인 예외가 아니었다. 노르웨이 베르겐대학교 요아킴 크리스텐센(Joakim Kristensen) 연구팀은 최근 발표한 대규모 연구에서 도박장애(Gambling Disorder) 환자의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이 자살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노르웨이 연구 결과는 아만다 페르난데스(Amanda Fernandes)와 로버트 T. 뮐러(Robert T. Muller) 박사가 <사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에 실은 기고문을 통해 소개됐다.

노르웨이 베르겐대학교 크리스텐센 연구팀(2025) 연구에 따르면 도박장애 환자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로, 전체 사망의 25%를 차지했고 일반인보다 자살로 숨질 위험이 약 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도박장애를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공중보건 문제로 봐야 한다며, 환자 진료·상담 때 자살 위험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절차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본 이미지는 기사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것입니다.)
이미지 확대보기■ 도박장애 환자 사망원인 1위는 '자살'
2025년 1월 크리스텐센 연구팀은 도박장애 환자 약 7000명과 다른 정신·신체질환 환자 약 40만 명을 비교한 역대 최대 규모의 코호트(특정 집단을 장기간 추적·비교하는 방식)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무거웠다. 도박장애 환자의 전체 사망 원인 가운데 자살이 2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도박장애 환자가 일반인보다 자살로 숨질 위험은 약 5배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크리스텐센 연구팀은 도박장애를 돈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정신건강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 도박도 뇌를 중독시킨다
도박장애는 미국 정신의학회의 진단 기준인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에서 유일하게 공식 인정한 행동중독(Behavioral Addiction)이다.
도박장애(Gambling Disorder)는 흔히 '강박적 도박(compulsive gambling)'으로도 불린다. 반복적이고 통제되지 않는 도박 행동으로 인간관계와 직장생활, 경제적 상황 등 삶의 여러 영역에서 심각한 기능 저하를 초래하는 만성 정신건강 질환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도박을 해도 중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돈이나 가치 있는 것을 걸고 더 큰 보상을 기대하는 과정에서 도박은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한다. 도박할 때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은 강한 쾌감을 일으키는데, 도파민의 작용 방식은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과 비슷하다.
결국 같은 만족감을 얻기 위해 더 자주, 더 큰 금액을 베팅하게 되고 중독은 점차 깊어진다.
■ "빚보다 무서운 건 수치심"
도박중독이 자살로 이어지는 이유는 돈을 잃기 때문만은 아니다.
2022년 국제 연구 검토에 따르면 도박으로 생긴 막대한 빚과 극심한 수치심(shame)이 자살 생각과 자살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많은 중독자는 잃은 돈을 되찾으려 다시 도박에 손을 대고, 되찾으려는 시도는 더 큰 손실과 더 깊은 중독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도박은 개인의 의지 부족'이라는 사회적 낙인까지 더해지면서 많은 중독자는 도움을 청하지 못한 채 절망과 고립에 빠져든다.
크리스텐센 연구원은 "도박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 비난과 자기혐오 때문에 자살을 유일한 탈출구로 인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 온라인 도박은 더 가까워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인구의 약 1.2%가 도박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전 세계 도박산업 규모는 2028년 약 7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카지노와 스포츠 베팅 플랫폼 이용이 크게 늘었고, 유명인을 앞세운 광고와 게임·소셜미디어를 통한 마케팅도 빠르게 퍼졌다.
도박이 하나의 여가문화처럼 일상에 스며들면서 중독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자살 위험도 함께 살펴야"
크리스텐센 연구팀은 도박장애를 한 사람의 정신질환을 넘어 임상과 정책이 함께 대응해야 할 공중보건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구팀은 도박장애 환자를 진료·상담할 때 자살 위험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도박 피해를 줄이는 예방정책이 자살률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바인버그도 "도박의 위험성을 사회에 제대로 알리고, 미디어도 도박의 폐해를 현실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안전한 도박 문화와 피해 예방 교육을 적극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 도박으로 잃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도박중독은 재산을 잃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빚과 수치심, 사회적 고립은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다. 노르웨이 연구는 도박중독을 개인의 의지나 실패의 문제로 돌릴 일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공중보건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다.
▶ 원문 기사 출처
"Gambling Disorder Shown to Put People at Risk for Suicide" Amanda Fernandes and Robert T. Muller, Ph.D. 2026.06.17. <Psychology Today>.
김지연(Jee Yearn Kim) Ph.D. /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형사정책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법심리연구소 박사후 연구원으로, 생성형 AI 기술 역기능 및 사용자 위험 요인 대응 정책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 범죄자 위험 평가, 교정 개입 원칙, 형사사법 실무자 조직행동, 스토킹 범죄자 개입 등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