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이 여사님은 부친께서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의사 선생님으로 유복하고 독실한 감리교 모태 신앙 가정에서 태어나셔서 이화여고, 서울대, 미국 유학 등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으셨다”며 “귀국 후 YWCA 총무를 시작으로 여성, 사회운동에 매진하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게 되셨고 당시 이 여사님의 주변에서는 결혼을 반대하셨지만 결혼하셨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희호 여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정도로 이 여사께서는 김 전 대통령께 많은 영향력을 끼치신 분”이라며 “두 분은 어디를 가시든 꼭 함께 했고, 동석했고, 그렇지만 이 여사께서는 김 전 대통령께서 대화를 하시면 언제 어떤 자리에서도 대화에 섞이지 않고 절제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여사님은 여성운동에 매진하시다가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하신 후 김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삶과 함께 민주화투쟁을 하셨다. 특히 김 전 대통령께서 구속 되고 나서는 가족들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과 석방, 구명운동 등 끝까지 투쟁을 하셨다”고 회상했다.
박 전 대표는 “김 전 대통령께서 1980년 감옥에 끌려가서 당시 신군부의 대표적인 인사인 이학봉 보안사 수사국장이 대통령만 아니면 뭐든지 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을 때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살고 싶은 욕망에 유혹에 넘어갈 뻔 했지만, 그 순간 이 여사님이 생각이 나 배신할 수 없었다고 말씀을 하셨다”며 “이 여사님은 김 전 대통령이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채찍질 했고 또 이탈하지 않도록 지켜보신 분”이라고 눈시울을 적셨다.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