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환은 친일적인 대신,관료들과 수차례 대립하였고, 일본제국의 내정간섭을 성토하다가 주요요직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는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의 체결을 크게 개탄하며, 조병세와 같이 을사늑약 반대상소를 수차례 올렸으나 일제 헌병들의 강제진압에 의해 실패했다. 이에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유서를 국민들에게 남기고 자결을 택하게 된 것.
민영환은 사망 후에 의정대신으로 추증됐으며, 고종이 사망한 뒤에는 고종 황제의 능원에 배향됐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친필로 쓴 묘비가 있다.
정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