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헤어진 아버지를 극적 상봉하고 가족들과 기념촬영.(사진제공=부산지방경찰청)
이미지 확대보기어쩌면 자신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아버지에게 원망을 마음을 가졌을 법 하지만 김씨는 동가숙 서가식(東家宿西家食)하지 않을 수 있었던 보육원에서의 생활이 한편 감사했고 오히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인정받는 엔지지어로서 안정된 직장인이자 든든한 남편, 두 딸의 아버지가 된 불혹의 나이가 되고 보니 더 늦기전에 자신이 먼저 아버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그는 어린시절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아버지와의 짧았던 추억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어린 시절 살았을 법했던 곳을 찾아 다녀보기도 했지만 야속한 사람의 기억은 무엇 하나 제대로 떠올리게 하지도 확인하게 하지도 못했었다. 주민센터에 문의도 해 보았지만 보육원 입소 후 새롭게 창설된 호적 때문에 과거의 자신을 증명할 수 없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경찰서 신고 후에도 부족한 단서들로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언젠가 자신을 찾아줄 아버지를 마냥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자신의 가슴앓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가 그만 포기하고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자 고도 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쉽게 잊혀 지지 않았다.
가족상봉이 있언 날 김씨는 아버지를 대신해 참석한 새어머니를 만나 그간의 안부를 나누었다.
며칠 후 김씨는 아내, 두 딸과 함께 대구에서 아버지를 직접 만났다. 오히려 김씨는 아들과 처음 만난 손녀와 며느리를 눈물로 용서를 구하는 아버지를 위로했다. 김씨는 “이제는 명절마다 찾아뵐 수 있는 부모님과 고향이 생겨서 더 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심경을 전했다.
전용모 기자 sisalaw@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