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3) ‘개발도상국에 가서 한 달만 지나보면 금방 깨닫는 게 국민적 자부심...(중략)...젊은 사람들 가슴 속에서 자긍심을 찾아볼 수 없다’ 2015년 11월 서울시청 간부회의 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발언이다. 본인은 청년들의 지나친 자조와 자긍심 부족을 지적한 것일지는 몰라도, 오 전 시장도 이제는 일명 ‘꼰대’가 됐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면4) 20대 총선에서 더민주는 당 내에 이미 명문화(당규로 규정)돼있던 청년비례 제도를 유명무실화 해버렸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년비례를 나이만 청년이지 청년세대를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인물로 공천을 하지 않았다. 어떤 특화된 직능이나 특징이 딱히 있어 보이지 않았음에도 청년의 나이로 비례공천을 받은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청년비례제도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예전부터 부정적이었다. 청년비례제도는 청년들의 정치활동을 장려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었지만 실상은 청년들의 정치적 활동범위를 오히려 축소하는 것이며, 기성 정치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정치권력의 공간을 나누지 않기 위해 청년들끼리만 경쟁하게 만든 달콤한 독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나마도 공천 후폭풍의 여파를 틈타서 청년비례를 없애버리거나 원래 의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로 갖다 놓았다. 역시나 기성 정치권에게서 청년은 액세서리나 다름없는 도구일 뿐임을 다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의 정치공간에는 간섭하지 말고 그거나(청년비례) 먹으라고 줬는데, 막상 총선이 임박하자 그마저도 뺏어버린 것이다.
지금 청년들 대부분이 ‘을’의 입장인데 그러한 ‘을’들을 위한답시고 만든 을지로위원회에 소속 정치인이 ‘갑’질에 능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정치권이다. 정치권은 그저 청년세대의 표가 필요한 것이지, 청년세대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능력과 의지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는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전반적인 생각이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청년들은 기성세대에게서 도움을 받기보다는, 다소 경험이 부족하고 경륜에 따른 지식도 부족하며 사회적 기반도 부족하겠지만 기성세대와 기득권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기성세대와 기득권세력은 절대로 그냥 기회를 주거나 자리를 열어주지 않는다. 혹여나 모기발톱만큼 뭔가를 준다고 해도 온갖 생색을 내고 치장을 해가며 겨우 넘겨준다.
YS와 DJ는 1950년대여서 20대에 국회의원 도전이 가능했고, 1970년대여서 40대에 대권도전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들이 직접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기치를 든 것이다. 그래서 정의당 당권경쟁에 나선 조성주의 도전은 이념과 정치성향 그리고 경과 및 결과 여부를 떠나서, 도전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현재 원내 1, 2, 3당 모두 비대위 체제이며 비대위원장들의 평균연령이 70대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70대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청년세대는 숫자에 불과한 나이를 왜 따지는지 모르겠다. 기성세대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다. 청년세대도 스스로가 숫자에 불과한 나이를 들먹이지 말고 정치와 권력의 자리에 당당하게 도전해서 차지해야 한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여기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임금문제, 청년실업대책, 해고문제, 사회개혁 등 청년세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들이 발생되면, 많은 프랑스 청년들이 연일 밤새 시위를 하거나 때론 과격한 시위 등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그들의 입장을 피력한다고 한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20대 청년의 투표율이 85%정도라고 한다.
프랑스의 정치권과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들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이처럼 청년세대가 행동하기 때문이다. 청년들 스스로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하며 청년세대 권익을 능동적으로 알리고, 정치와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의 말에 귀 기울이게 만들면서 끝내는 쟁취해내기 때문이다. 참고로 필자의 주장은 ‘시위’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행동’에 두고 있음을 확실히 하겠다.
청년세대의 목소리 크기를 키우고 힘을 모아서 기성세대와 기존 시스템에 끝없는 도전을 해야 한다. 그래서 청년세대가 스스로를 위해 직접 움직여야 한다. 어른들에게 기대할 것은 없다. 어르신들은 그들의 노후고민만으로도 충분히 골치 아프다. 어르신들은 청년들을 돌봐줄 여유도 소통능력도 부족하다. 분명히 하자면, 기성세대는 청년의 편이 아니다.
“청년세대여! 이대로 그냥 지나면서 중년 될래?”
“을乙들의 한비韓非동행同行”의 공저자. 정치 컨설턴트 김효태.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