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언론탄압 맞선 동아일보 해직기자(동아투위) 국가에 승소

“국가는 동아일보 해직기자 13명에 각 1000만원씩 지급하라” 기사입력:2016-05-11 18:20:59
[로이슈=신종철 기자] 1970년대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선 동아일보사 기자들 해고사태 당시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참여하며 해직된 기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이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해서다. 1975년 이들이 해직된 지 무려 41년만의 일이다.

법원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은 1967년경부터 각 언론사에 담당기관원(중앙정보부 직원)을 출입하게 해 기자들의 동태와 보도될 기사내용에 대한 감시ㆍ감독을 수시로 해왔고, 1971년 말경부터는 문화공보부가 직접 신원조회를 통해 기자들의 자격을 심사한 후 기자증을 발급해 주는 프레스카드제를 시행했다. 그 외에도 언론인들을 불법 연행해 밤샘조사를 하고 이들에게 사직서와 서약서의 작성을 강요하는 등 신문, 방송의 제작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박정희 정권은 1971년 12월 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 ‘비상사태 하에서 대통령은 국가안위, 국론분열 및 사회질서 혼란을 조장할 위험이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언론ㆍ출판을 규제하기 위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제8조)’는 내용의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그해 12월 27일 공포ㆍ시행했다.

1972년 11월 21일에는 언론ㆍ출판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내용의 침해금지를 규정한 기존 헌법 제18조를 ‘모든 국민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자유를 제한받지 아니한다’는 내용의 개별적인 법률유보조항으로 개정한 유신헌법을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시켰다.

1974년 1월 8일에는 ‘위와 같이 개정된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와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 및 위와 같은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의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하고,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하여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 수색할 수 있으며,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하되,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의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를 공포 시행하는 등 법적으로도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위와 같은 언론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동아일보 소속 기자들은 1971년 4월 15일 ‘기자적 양심에 따라 사실을 진실대로 보도하고, 외부로부터 직ㆍ간접으로 가해지는 부당한 압력을 일치단결하여 배격하며, 명예를 걸고 기관원의 사내 상주 또는 출입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제1차 언론자유수호선언을 했다. 위 언론자유수호선언은 한국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문화방송, 동화통신 등 전국 각지 14개 신문, 방송, 통신사 소속 언론인들의 언론자유수호선언으로 이어졌다.

제1차 언론자유수호선언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권이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1972년 11월 21일 언론의 자유를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는 유신헌법을 국민투표라는 형식을 빌려 확정짓자, 경향신문 수습기자들의 1973년 10월 19일자 결의문을 필두로 한국일보, 조선일보 등 소속 언론인들의 제2차 언론자유수호선언이 이어졌다.

동아일보사 소속 언론인들 역시 1973년 11월 20일 ‘정부의 언론에 대한 부당한 간섭의 중지 요구, 외부의 압력 배격, 언론의 자유 확보’ 등에 대해 결의하고, ‘보도해야 할 중요한 기사가 누락되었을 때에 그 누락 경위를 알아보고 그날 밤으로 편집국에 모여 가능한 모든 대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선후배 동료가 기사와 관련, 부당하게 연행됐을 때 이 사실을 즉시 보도하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편집국에서 기다리기로 한다’는 행동강령을 세우는 등 제2차 언론자유수호선언을 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국내외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을 인식하고 유신체제나 안보에 위해가 되는 기사는 싣지 않기로 한다’는 내용의 ‘자율방침’을 마련해 각 언론사 발행인들로 하여금 이에 서명하도록 종용하는 등 정부의 언론 탄압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자 동아일보 언론인들은 제2차 언론자유수호선언에 연이어 1973년 12월 3일 ‘위와 같은 발행인 서명공작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만약 본사 발행인이 당국의 강압에 못 이겨 끝내 자율방침에 서명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신문제작과 방송뉴스의 보도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제3차 언론자유수호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에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동아일보에 게재된 ‘서울 농대생들 3백여 명 데모’라는 기사와 관련해 1974년 10월 23일 동아일보사 편집국장인 송건호, 사회부장인 박원근, 지방부장인 한우석을 연행해 갔다.

이에 다음날 동아일보 편집국ㆍ방송국ㆍ출판국 기자 등 180여 명은 동아일보 사옥에 모여 ‘자유언론에 역행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민주사회 존립의 기본 요건인 자유언론실천선언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선언하고, 자유언론실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실천사항을 점검하는 등 기존 언론자유수호선언 보다 더 구체적인 실천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위 운동에 동참한 신문, 방송, 통신사들은 한국일보, 조선일보, 서울신문, KBS, MBC 등 35개 사에 달했다.

위와 같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이어지자, 중앙정보부는 1974년 12월 초경부터 동아일보사의 주요광고주 혹은 광고책임자들을 중앙정보부로 불러 ‘앞으로 동아일보에 광고를 게재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미리 인쇄된 서약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하고, 이들이 그 후 동아일보에 다시 광고를 게재하는 경우 임의로 연행해 가는 등 동아일보사의 주요광고주들에 대해 광고해약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동아일보 광고수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8개 대광고주들이 일시에 광고계약을 철회하고, 이후에도 대광고주 20여 개 사를 포함해 동아일보의 평상시 상품광고의 98%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동아방송도 전체 광고방송의 84%가 해약됐다.

동아일보사는 1974년 12월 26일부터 일부 광고지면을 백지인 상태로 내보낼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12월 30일부터 신민당,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등의 단체를 비롯해 전국 각지의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언론탄압의 해제를 촉구하는 내용에서 개인광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의 격려광고를 동아일보에 게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격려광고는 1975년 5월 8일까지 계속됐고 그 수는 무려 1만 352여 건에 이르렀으며 이로 인해 동아일보사에 1억 1294만원의 격려광고비가 들어왔다.

그러자 중앙정보부는 동아일보에 실린 격려광고에 대해서도 탄압을 멈추지 않았다.

한편 새로 취임한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1975년 3월 경영악화를 내세워 심의실, 편집국의 기획부, 과학부, 출판국의 출판부 등 1실 3부를 폐지하고 그 소속 사원 18명(이에는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있어 핵심 인물인 안성렬, 동아노조지부장인 조학래 등 포함)을 사전 통고도 없이 해임했다. 또 해임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내용의 유인물 ‘알림’을 허가를 받지 않고 배포했음을 이유로 장윤환 기자를, 집회에서 주필을 모욕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박지동 기자를 추가로 해임했다.

이에 동아일보사가 정권의 언론탄압에 굴복해 기자들을 해임한 것이라 판단한 동아일보사 소속 기자 등 언론인들이 1975년 3월 12일부터 ‘해직사원 20여 명의 복직과 이OO 주필의 즉각 퇴진이 관철될 때까지 신문ㆍ방송ㆍ잡지의 제작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편집국, 공무국을 점거하고 신문과 방송의 제작을 거부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자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야간통행금지 시간대인 새벽에 경비, 직원 등 200여 명을 동원해 기자들의 농성을 강제로 해산시킨 다음 1975년 6월 24일경까지 사이에 무려 49명의 언론인을 해임하고 84명의 언론인을 무기정직시켰다

그 후 무기정직 당한 사원들의 대부분은 동아일보사로부터 복직명령을 받지 못해 자동 해임됐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정리위원회)는 신청인 조양진 외 49명으로부터 2006년 4월 동아일보사에 대한 광고탄압 및 이에 항거한 언론인들에 대한 대량해임에 부당한 공권력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을 받았다.

조사결과 2008년 10월 ‘국가는 광고 수주를 차단해 경영상의 압박을 가함으로써 사주를 굴복시키는, 광고탄압이라는 방법으로 동아일보사를 탄압했고, 동아일보사 역시 위법한 공권력의 압력에 굴복ㆍ순응해 정부의 요구에 따라 언론자유 수호에 앞장 선 언론인들을 대량 해임ㆍ무기정직 시켰다. 따라서 광고탄압과 언론인 대량해임은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정책에 따라 자행된,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행위이다’라는 취지의 진실규명결정을 했다.

이에 국가에 대해 동아일보사 및 해임된 언론인들에 대한 사과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동아일보사에 대하여도 해임된 언론인들에 대한 사과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결국 1975년 3월 8일부터 6월 24일 사이에 해임된 동아일보사 소속 언론인들 혹은 이들의 상속인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들은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과 유신정권을 유지하려는 국가가 언론통제에 항거한 동아일보 소속 언론인들을 해임시킬 목적으로 동아일보에 광고탄압이라는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했고, 이에 굴복한 동아일보가 원고 등을 해임한 것이라는 진실이 규명됐다”며 “따라서 국가는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사죄문구가 기재돼 있는 ‘사죄광고’를 5대 일간지에 게재해야 하고, 국가의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부당하게 해임을 당한 원고 등에게 위자료로 각 1억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은 2011년 1월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해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다”면서도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소 제기 전에 이미 시효로 소멸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과거 군부정권이 끝나고 김영삼 정권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시점부터는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었고, 원고들 주장과 같이 피고가 불법행위를 시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진상파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거나 혹은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원고들이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웠다는 사정만으로는 그동안 원고들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정이 있었다거나 피고가 원고들의 권리 행사나 시효 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하게 곤란하게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따라서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들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도 2012년 3월 “1심 판단은 정당하다”며 원고들의 항소를 기각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2014년 12월 생활지원금 등을 수령한 원고들 중 일부 사건에 대해 각하했다. 하지만 14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받아들여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재판부는 “신청인이 생활지원금 등을 지급받음으로써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에 대해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있었던 것과 동일한 효력이 발생하므로 원고들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된 해임 등과 관련해 입은 피해에 대해 다시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는 권리보호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아일보사에서 해직된 언론인 중 13명의 손해배상청구는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피고 산하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진실규명결정을 해 피고가 소멸시효의 이익을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부여했고,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원고들은 진실규명 결정일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으므로, 이러한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해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해 허용될 수 없다”며 국가의 주장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해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니,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소멸시효 항변의 권리남용 해당 여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파기환송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제1민사부(재판장 신광렬 부장판사)는 2015년 12월 “국가는 동아일보 해직기자 13명에게 각 10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의 광고탄압과 같은 불법행위로 말미암아 원고 언론인들이 해임됐다고 판단되고, 원고 언론인들이 몸담아 온 언론사를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떠날 수밖에 없게 됨으로써 막대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피고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로 원고 언론인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소멸시효와 관련, 재판부는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해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해 허용될 수 없다”며 “결국 원고 언론인들의 재항변은 이유 있고,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은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국가가 상고했으나, 대법원 제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지난 4월 29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소속 해직기자 권근술 씨 등 1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재상고심(2016다1243)에서 국가의 상고를 기각하며 이들에게 각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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