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에 위헌 결정 내린 헌법재판소

헌재 “대법원이 실효된 법 조항을 유효한 것으로 판단한 것은 일종의 ‘입법행위’” 기사입력:2012-06-08 12:22:28
[로이슈=법률전문 인터넷신문] 최고 사법기관의 자리를 두고 신경전을 벌여온 헌법재판소가 정면으로 대법원 판결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결정을 내려 파장이 예상된다.

GS칼텍스는 자산재평가를 실시하고 지난 1990년 10월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상장을 신청했으나, 주식상장이 어렵게 되자 2003년 12월 스스로 자산재평가를 취소했다.

이에 역삼세무서장이 2004년 4월 옛 조세감면규제법을 근거로 그동안 감면받은 법인세(1990~1999년분) 등을 다시 내놓으라며 707억 원을 부과하자 GS칼텍스가 과세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역삼세무서는 자산재평가 법인이 주식을 상장하지 않는 경우 자산재평가를 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구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를 근거로 이 같은 처분을 내렸으나 이 법은 1994년 1월1일자 전면 개정을 통해 실효(失效, 효력상실)됐다.

이 사건은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거쳐 2009년 5월 서울고법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GS칼텍스는 법원에 이 사건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당하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에이케이리테일도 1990년 10월 자산재평가를 실시해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상장을 준비했으나 2003년 12월까지 상장을 하지 못했다. 이에 삼성세무서장이 2004년 1월 상장기간 내에 주식을 상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조항을 근거로 법인세 등 104억 원을 부과하자 소송을 냈으나 역시 패소하자 헌법소원을 냈다.

대법원은 “이 사건 부칙조항이 실효된 것으로 본다면, 이미 상장을 전제로 자산재평가를 실시한 법인에 대한 사후관리가 불가능하게 되는 법률의 공백상태가 발생하고, 상장기한 내에 상장을 하지 않거나 자산재평가를 취소한 법인을 그렇지 않은 법인에 비해 합리적 이유 없이 우대하는 결과에 이르므로 공평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부칙조항이 이 사건 전부개정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실효되지 않았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해석하며 “과세부과처분이 적법하다”며 세무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해당 부칙이 과세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전문개정법에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정면으로 대법원 판단을 뒤집었다.

이번 결정은 표면적으로는 헌재가 문제가 된 옛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제23조의 헌법 위반 여부를 따진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대법원의 법 해석의 위헌 여부를 판단했다는 점에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간의 다툼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GS칼텍스와 에이케이리테일이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가 1993년 법 개정으로 실효됐는데도 대법원이 효력이 있다고 보고 세금부과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것은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조세는 국민의 재산권 제한과 관련되므로 납세의무를 성립시키는 과세요건과 조세의 부과ㆍ징수절차 모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제정한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 ‘조세법률주의’이고 과세요건법정주의와 과세요건명확주의를 그 핵심내용으로 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률이 전부 개정된 경우에는 기존 법률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종전의 본칙은 물론 부칙 규정도, 그에 관한 경과규정을 두거나 이를 계속 적용한다는 등의 규정을 두지 않은 이상 전부개정법률의 시행으로 인해 실효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사건 부칙조항은 그 이후 제정된 전문개정법에서 계속적용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았고 위 부칙조항을 대체할 만한 별도의 경과규정을 둔 바도 없으므로, 이 사건 전문개정법이 시행된 1994년 1월 1일자로 실효됐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형법조항이나 조세법의 해석에 있어 헌법상 죄형법정주의, 조세법률주의의 원칙상 엄격하게 법문을 해석해야 하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할 수는 없다”며 “기존에는 존재했으나 실효돼 더 이상 존재한다고 볼 수 없는 법률조항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형벌의 부과나 과세의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을 법률해석을 통해 창설해 내는 일종의 ‘입법행위’로 헌법상 권력분립원칙, 죄형법정주의, 조세법률주의의 원칙에 반한다”고 대법원을 꼬집었다.

또 “조세법률주의가 지배하는 조세법의 영역에서는 경과규정의 미비라는 명백한 입법의 공백을 방지하고, 형평성의 왜곡을 시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권한이고 책임이지 법문의 한계 안에서 법률을 해석ㆍ적용하는 법원이나 과세관청의 몫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뿐만 아니라 구체적 타당성을 이유로 법률에 대한 유추해석 내지 보충적 해석을 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유효한’ 법률조항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것이지 이미 ‘실효된’ 법률조항은 그러한 해석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따라서 관련 당사자가 공평에 반하는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하여 이미 실효된 법률조항을 유효한 것으로 해석해 과세의 근거로 삼는 것은 과세근거의 창설을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에 맡기고 있는 헌법상 권력분립원칙과 조세법률주의의 원칙에 반하므로, ‘이 사건 전부개정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부칙조항이 실효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헌법상의 권력분립원칙과 조세법률주의의 원칙에 위배돼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이번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GS칼텍스 등은 법원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법원에서 재심 결정을 내린다면 사실상 그동안 진행된 재판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법원이 재심을 기각할 경우 사건은 다시 헌재로 돌아오게 돼 헌재와 법원의 갈등이 심화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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