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백혈병 근로자 추모 집회…대법원의 판단은?

집시법이 정한 ‘시위’ 맞다…강제해산 불응은 위험 없어 처벌 못해 기사입력:2012-05-07 15:10:58
[로이슈=법률전문 인터넷신문] 신고하지 않은 집회라도 공공의 안녕질서에 명백한 위험이 없다면 경찰의 해산명령에 응하지 않았더라도 ‘해산명령 불응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회원인 P(35)씨 등은 2010년 4월2일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의 장례식장(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앞에서 ‘OOO의 죽음은 삼성에 의한 타살이다’라는 내용의 현수막과 ‘노동자 생명 앗아가는 삼성을 규탄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이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까지 숨진 근로자의 영정사진과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다시 서울성모병원 정문으로 왔는데 행진을 막으려는 경찰과 대치하다가 자진해산했다.

한편, 검찰은 이들의 집회가 미신고 집회 및 시위라는 이유로 또한 경찰의 3차례 해산 명령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기소했다.

반면 P씨 등은 “당일 개최한 집회 및 시위는 집시법 제15조에 규정된 관혼상제에 해당해 신고대상이 이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과 항소심인 서울중앙지법 제4형사부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반올림 회원 P씨 등 6명에게 벌금 50만~7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사용한 피켓 등의 내용이나 구체적인 행동, 망인의 유족은 참석하지 않았고, 망인의 시신은 이미 장지로 출발했던 점 등에 비춰 보면, 피고인들이 단지 망인을 추모하기 위한 행위만을 했다고 볼 수 없고, 거기서 나아가 특정업체(삼성)를 규탄하고자 모여 기세를 보여 불특정 다수의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는 행위도 함께 한 것”이라며 유죄를 인정했다.

또 “피고인들 및 변호인은 기자회견이었을 뿐 집회나 시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취지로 주장하나, 피고인들의 행위는 설령 그것이 기자회견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집회 및 시위로서의 성격 또한 함께 갖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2011도6294)은 달랐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삼성을 규탄하는 미신고 집회를 개최한 혐의로 기소된 ‘반올림’ 회원 P(35)씨 등 6명에게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깨고, ‘해산명령 불응’ 혐의는 무죄 취지로 서울중앙지법 합의부에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미신고 옥외집회 또는 시위는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에 한해 해산을 명령할 수 있다”며 “이런 요건이 갖춰진 경우에만 집시법상 해산명령 불응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신고라는 사유만으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해산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이는 사실상 집회의 사전신고제를 허가제처럼 운용하는 것과 다름없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게 되므로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런 법리에 비춰 볼 때, 원심이 피고인들의 집회 및 시위가 미신고 집회 및 시위인 이상 집시법이 정한 해산 명령의 대상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피고인들의 집회 및 시위로 인해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됐는지 여부에 관해 심리 판단한 다음 해산명령에 불응한 행위가 집시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했어야 했다”며 “결국 원심판결에는 집시법의 해산명령 불응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어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케 하기 위해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낸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삼성을 규탄하는 내용의 피켓 등을 든 채 일렬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정문까지 행진한 행위는 망인에 대한 장례식이 이루어지는 기회를 이용해 망인에 대한 순수한 추모의 범위를 넘어서 다른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하는 행위에까지 나아간 것으로서, 이는 집시법이 정한 ‘시위’에 해당해 사전에 신고서를 경찰서장에게 제출할 것이 요구된다”며 “미신고 집회에 대해 유죄로 판단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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