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대법원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 제소제도(ISD)’에 대해 “극심한 법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정부에 밝혔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은 2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8쪽짜리 ‘한-미 FTA 국제투자분쟁 해결절차와 관련한 검토의견’ 전문을 공개했다. 이 의견서는 2006년 6월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당시 법무부의 요청에 따라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투자분쟁 해결절차’와 ‘투자자-국가 제소제도’는 같은 뜻이다.
검토의견에서 법원행정처는 ‘투자자-국가 제소제도’에 대해 “FTA 체약국간 분쟁해결절차와는 별도로 투자자 대 국가 간 투자분쟁해결절차(투자자-국가 제소제도)를 두는 것은 외국에 투자한 투자자의 사유재산이 투자 유치국 정부의 부당한 차별 대우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경우, 투자 유치국 국내법원이 투자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있고, 정부 간 교섭에 의한 분쟁해결은 외교적 고려가 우선돼 손해가 실질적으로 보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고려에 따른 것으로서, 외국 투자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투자자-국가 제소제’는 국제투자 분쟁분야에서 대두된 새로운 형태의 분쟁해결절차로, 이로 인해 해당 분쟁에 대한 투자 유치국 국내법원의 사법심사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고, 외국인 투자자가 자신의 권리구제를 도모할 포럼(Forum)과 관련해 새로운 선택권을 추가로 보유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원행정처는 이 제도의 장점으로 “국내법원이 아닌 국제법정에서 투자분쟁 해결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최소한 형식적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봤고, 또 “국가는 해외에 투자를 하는 자국민을 보호할 수 있고, 외국 투자자의 자국 내 자본유치를 촉진하는데 기여할 수 있으며, 기존 국가 대 국가 간 분쟁이 초래된 정치, 외교적 파급 및 비용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단점은 많다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는 먼저 미국은 2006년 3월 현재 40개국과 양자투자협약이 발효 중인데, 40개국에서 제기한 ‘투자자-국가 제소제’에 따른 소송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오로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에 따른 ‘투자자-국가 제소제’에 의한 청구만 있을 뿐이고, 그것도 모두 캐나다 투자자가 제기한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다른 국가 투자자의 소송제기 건수가 적은 이유는 미국의 협약 대부분이 개발도상국가와 체결한 것이고, 개발도상국가의 투자자들이 미국이 상대로 소를 제기할 여건이 부족한 것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법원행정처는 그러면서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한-미간 FTA의 투자분쟁해결절차에서 미국 투자자의 우리나라 정부에 대한 중재 청구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돼,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제소에 따른 대응 등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의 예에서 보듯이 중재 청구 대상에 사법부의 재판을 배제할 수 없다면 극심한 법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법원행정처는 “결론적으로 한-미 FTA ‘투자자-국가 제소제’ 도입 여부는 도입할 경우의 장점 및 문제점, 한-미 간 거래 규모 및 상황, 외국의 FTA 체결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국민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판단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아울러 “‘투자자-국가 제소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중재 청구 대상에 사법부의 재판은 배제하는 등 중재 청구의 대상과 요건을 구체적으로 특정해, 미연에 그 해석과 관련한 분쟁을 방지하고, ‘투자자-국가 제소제’에 따른 분쟁해결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운영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법원행정처는 검토의견에서 문제점으로 주권의 침해 가능성을 꼽았다. ‘투자자-국가 제소제’를 도입하면 국제중재기구가 투자 유치국 정부의 각종 정책이나 규제 조처가 간섭받고, 이러한 분쟁에 대해 국내 사법부가 관여할 여지가 없게 돼, 국가의 주권 또는 사법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투자자-국가 제소제’를 두는 경우 미국 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직접 중재를 청구할 수 있어 외국인이 우리 국민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지게 돼 평등권에 어긋날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소위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남미 등 개발도상국이 국제법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에 반대해 이런 견해를 취했지만, 현재에는 오히려 미국과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에서 내국인 역차별에 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법원행정처는 밝혔다.
실제로 미국 연방의회는 2002년 무역촉진권한법을 제정해, 미국 시민권자보다도 더 큰 권리를 외국인에게 부여하는 일이 없도록 행정부가 투자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제약을 뒀다.
이와 함께 법원행정처는 “‘투자자-국가 제소제’ 하에서는 국내 사법부의 재판도 중재 청구의 대상이 됨으로써 법적 불안정 및 불안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의 투자분쟁해결절차에 따라 미국의 재판 절차 또는 판결이 중재 청구의 대상이 된다고 판정한 로언(Loewen) 사건을 구체적인 사례로 들었다.
캐나다의 장의업체인 로언이 1995년 미국 미시시피 주법원에서 5억 달러를 배상하라는 배심원 평결을 받자, 북미자유무역협정 위반이라며 ‘투자자 국가 소송’을 청구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 이후 미국 NGO나 의회 내에서도 NAFTA(나프타)의 분쟁해결기관이 미국 주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까지 판단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법원행정처는 “사법부의 재판이 무차별적으로 중재 청구 대상이 될 경우에는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재판을 중재 청구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이나 대상을 제한해 명확히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의 공공정책 왜곡 문제도 지적됐다. 법원행처는 “‘투자자-국가 제소제’ 하에서는 국제중재재판부가 투자 유치국 정부의 각종 정책이나 규제조치에 대한 평가 및 심리를 하게 돼, 정부의 각종 공공정책 등이 국내 사법부가 아닌 중재재판부에 의해 판단됨으로써 정책이 왜곡되거나 국가적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NAFTA 관련 투자분쟁해결절차에서 이런 문제점이 제기되자, 연방의회가 미국 정부의 향후 FTA 체결 협상권한에 일정한 제한을 가했고, 그 후 체결된 미-칠레 FTA에서는 ‘특별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중 건강, 안전 및 환경 등에 관한 정부 정책은 간접 수용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두게 됐다.
법원행정처는 다만 한-미 FTA 초안에도 이런 내용이 미-칠레 FTA 규정과 동일하게 규정됨으로써 ‘투자자-국가 제소제’로 인한 국가의 공공정책 왜곡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대법 “한미 FTA ISD제도, 극심한 법적 혼란 초래”
2006년 ‘한-미 FTA 국제투자분쟁 해결절차와 관련한 검토의견’ 정부에 제출 기사입력:2012-04-26 18: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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