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친일인명사전’서 아버지 이름 빼라…기각”

홍순일 후손이 민족문제연구소 상대로 낸 서적복제, 배포금지 소송 패소 기사입력:2012-04-13 16:34:10
[로이슈=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민족문화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서 아버지와 관련된 부분(이름, 행적)을 삭제하고, 이를 삭제하지 않고는 서적을 출판ㆍ복제ㆍ배포해서는 안 된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법원에서도 기각됐다. 명예훼손 등 인격권 침해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 11월 일본제국주의의 불법적 국권침탈과 강압적 식민통치, 반인류적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인물의 행적을 조사하고 정리함으로써 역사를 공정하게 기록하고 평가하는데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했다.

그런데 이 서적에는 1939년 만주국 고등관 특별적격고시에 합격한 홍순일 씨가 해방 당시까지 일제 강점기 하에서 만주국 마정국 사무관으로 근무했고, 만주국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의 협화회(協和會) 조직인 계림분회의 전체 임원회의에서 평의원으로 선임됐다는 내용과 해방 후의 경력 등이 게재됐다.

그러나 그 후손인 홍OO씨가 “일제 강점기 하에서 만주국의 천임관 이상의 관리로 재직한 사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는 것은, 아버지와 같이 구체적인 친일행위가 없는 사람을 ‘친일파’로 낙인찍는 결과를 가져와 아버지 및 유족의 명예와 인격권을 중대하고 현저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소송을 냈다.

만주국 관료는 크게 문관과 무관으로 구분되고, 문관은 행정관, 사법관, 기술관, 교관으로 구성되는데, 행정관료인 참사관, 이사관, 사무관이 천임관에 해당하고, 천임관 이상의 경우 고급 관료인 고등관으로 분류된다.

홍씨는 또 “민간연구소에 불과한 민족문제연구소가 자의적으로 선정기준을 정해 수록대상자를 선정했을 뿐만 아니라, 수록대상자로 선정된 것에 대한 적절한 이의절차도 두지 않은 절차적 하자도 있으므로 친일인명사전에 홍순일 및 그의 행적을 수록한 것은 언론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1심인 서울북부지법 제13민사부(재판장 박순관 부장판사)는 2010년 11월 홍순일 씨의 아들 홍OO씨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민족문제연구소를 상대로 낸 서적복제, 배포금지 등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친일인명사전의 편찬 취지와 목적은 특정 개인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공정하게 기록하고 평가하기 위한 것이고, 수록대상자의 선정기준으로는 일제 하에서 매국행위에 가담한 자나 독립운동을 직접 탄압한 반민족행위자 외에도 일정한 직위 이상에 있었던 공직자는 그 지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취지에서 부일협력자 범주에 포함시켜 수록대상자로 삼았다는 것이며, 위 기준에 따라 홍순일은 일정 직위 이상의 공직에 있었다는 이유로 친일인명사전의 수록대상으로 포함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위와 같은 친일인명사전의 편찬 취지와 목적, 수록대상자 선정기준, 수록내용 등에 비춰 피고가 홍순일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한 주요한 동기 내지 목적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것이 아닌 특정 개인을 폄하하거나 비난 도는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 “피고는 친일인명사전을 발행하기 위해 수록대상 및 분야별 세부기준 등과 관련해 다방면 전문가들의 참여를 통한 논의를 거친 후 발행에 앞서 2008년 4월 관련자의 이의제기와 학계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 선정기준과 수록대상자 4776명의 명단을 미리 발표하는 등 그 선정에 있어 비교적 신중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홍순일 씨에 대해서도 근무경력 등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을 기술한 것으로서 그 내용이 진실에 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가 친일인명사전에 홍순일 및 그의 행적을 수록하는 것이 표현행위에 대한 사전금지를 허용할 만큼 홍순일 및 그 유족인 원고의 명예 등 인격권을 침해함이 명백하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이에 홍씨가 항소했으나 서울고법 제15민사부(재판장 김용빈 부장판사)는 2011년 9월 1심과 판단을 같이하며 홍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13일 홍씨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민족문제연구소를 상대로 낸 서적복제, 배포금지 등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피고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중 홍순일 및 그의 행적을 수록한 내용이 진실에 반하는 것이라 볼 수 없고, 수록 동기 내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 점, 또 피고의 표현행위의 가치가 원고의 명예에 우월하지 않다는 것이 명백하다거나 그에 대한 유효적절한 구제수단으로서 금지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인정한 다음, 이를 종합할 때 피고의 표현행위에 대한 사전금지를 허용할 만큼 홍순일 및 유족인 원고의 명예 등 인격권을 침해함이 명백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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